▲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문재인 대통령의 첫 출발은 신선했다. 향후 국정수행에 대한 기대치도 83.8%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전대미문의 국정공백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국민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국정 회복을 바라는 목마름 때문일 것이다.
 
후보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5년 동안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로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꼽았다. 적폐청산은 그동안 누적된 폐단이나 비리, 관행 같은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에서 어느 정부나 출범 초기에 내거는 슬로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지난 9년에 걸친 ‘이명박근혜’ 정권의 퇴행적 행태가 역사를 30년도 더 후퇴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질러 놓은 적폐는 하나 둘이 아니고, 간단히 해결하기도 어렵다. 어떤 것은 아예 손을 못 대도록 대못을 박아 놓은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을 조기에 찾아내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 정부는 범국민 통합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번 문재인 정부만이 아닌 모든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사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임 두 정부는 노골적인 지역편중 인사로 국민통합에 크게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5,000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그들만의 대통령이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모두 나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한 말은 이를 의식한 발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적폐청산은 검찰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제자리 찾아주기가 될 것이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정상적인 위치로 자리매김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과 기소독점주의 같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막강 파워를 행사해 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사들의 비리는 극에 달했고, 이를 수사해야 할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와 조직적으로 은폐하기에 바빴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비리를 전담해서 수사하는 기관, 즉 공수처 신설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다 본질적인 접근 없이 외형만 바꾸는 식으로 공수처라는 조직을 신설하면 자칫 옥상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고쳐 수사권은 경찰이, 공소권은 검찰이 행사하도록 분리하는 방안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법무부는 국가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미국의 법무부는 그 명칭에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Justice’가 들어가 있다. 어떤 방안이 됐든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고 충분한 공론과정을 거쳐 마련한 결론이라면 부작용이 없을 것이다.
 
검찰개혁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에 기용함으로써 분명해졌다고 본다. 그동안 검찰출신을 기용해왔던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 순수 학자출신을 그 자리에 등용함으로써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조국 수석은 취임 직후 정윤회 문건 재조사 방침을 밝힌데 이어, 검찰·국정원·경찰·기무사 등 관련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문서파기를 경고했다. 이에 앞서 임명 첫날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검찰개혁 다음으로 비중 있는 개혁과제는 국가정보원에 대한 리모델링이 될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정권교체기에 본연의 임무와는 무관한 정치적 일탈행위를 자행함으로써 국민적 불신을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의 기능에서 민간사찰 등 국내정치 활동은 없애고 대북정보와 해외정보만 맡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국정원 개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인 혁신에 접근하지 못하고 ‘무니만 개혁’에 그치고 말았다. 무소불위를 유소불위 정도로만 약화시키는 데 그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독대하던 관행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은 전혀 손도 대지 못했다. 사실상 방치해 둔 셈이었는데, 그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일한 통제 사령탑이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그 조직은 얼마나 해피한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에서는 정권교체를 기정사실로 두고 기관의 자구책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자체적으로 마련한 그들 나름의 개혁안을 들이 밀 것인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문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충족시켜 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단순한 조직정비 차원을 넘어 과감한 조직개편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정원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또 현황판을 설치해 날마다 그 진척상황을 표시하라고 강조했다.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은 적폐청산 못지않게 중요한 개혁과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또 인천공항공사로 달려가 비정규직을 공공부문에서부터 없애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일자리 현황판을 만든다고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날마다 일자리 증감을 표시하는 숫자판에 집중하다 보면 공무원들은 일자리 창출의 본질 보다는 외형, 즉 숫자 채우기에만 급급할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공약했던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끌기 보다는 민간과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이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도 결국은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봉착하고 있는 화급한 현안은 역시 4강에 둘러싸인 국가안보 문제다. 사드(THAAD) 배치 문제와 북한의 핵문제는 그 중에서도 발등의 불이다. 사드 배치 비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망언에 가까운 발언도 문재인 정부가 고도의 지혜를 모아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김정은은 남쪽에 새 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나흘만인 14일 새벽 평북 구성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 새 정부를 시험하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보회의를 소집, 사태를 점검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미국도 강도 높은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와는 달리 북핵문제를 빅딜로 해결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분명한 건 북핵문제의 당사자인 우리도 나름의 해결방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반도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대북 적대시 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불명예였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가 취해 왔던 의전위주의 허장성세에서 벗어나 국익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당당한 자주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는 계속 유지해 나가되 미국에 대해서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뒤집어 버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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