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통령은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최순실 씨와 함께 3시간가량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씨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40년 지기도 법정에선 무용지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최순실 씨와 함께 3시간가량 재판을 받았지만, 인사를 나누거나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정면만을 응시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무직’이라 밝히고, “변호인 입장과 같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씨는 달랐다. 법정에 들어서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잠시 바라본 뒤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급기야 “대통령을 법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인 것 같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 “최순실 믿었는데… 제가 속은 것이 잘못”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40년 인연은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다섯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최씨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최씨에게 속은 것이 잘못”이라며 참담한 심경과 후회를 나타낸 것. 무엇보다 삼성그룹이 최씨를 다방면으로 지원한 데 대해 “이번에 사건이 있고 나서 알았다”면서 자신 역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진술은 월간조선에서 공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피의자 신문 조서에 담겨 있다.

조서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씨가 연루된 모든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선을 그었다. 최씨가 임원들에 대한 면접을 보면서 적극 나선 점, 더블루케이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최씨라는 점, K스포츠재단 설립 하루 전 더블루케이가 설립됐다는 점 등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재단 이름으로 제시된 몇 가지 안 중에 “미르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는 언론 보도를 보고 “상당히 의아했다”면서 “최씨가 왜 저를 이렇게 속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최순실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자 감정이 격해졌다. 그는 “대통령을 법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인 것 같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뉴시스>
뿐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다량의 문건을 최씨에게 보낸 것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최씨가 국민들에게 와 닿는 표현을 쓰는 솜씨가 있어서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일부 연설문, 말씀자료의 표현에 대해서 조언을 들어보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자료나 문서에 대해서는 최씨로부터 의견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추측하자면, 두 사람이 오랫동안 자신을 도운 만큼 “서로 가까운 사이라 자료 등을 쉽게 공유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조서 내용의 정황상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최씨에 대한 배신감이 엿보인다. “최씨가 사심 없이 돕는다고 믿었다”는 그의 토로에서 더욱 그랬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의 그러한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하는 늦은 후회가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는 데 화가 났다. 그는 “그런 일을 하려고 대통령을 했겠는가. 3년 반을 고생을 고생인 줄 모르고 살았는데,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드느냐”고 분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씨와 함께 뇌물수수 공범으로 묶여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선 최씨와 함께 재판을 받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최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는 것은 “살을 에는 고통과 같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각각 변호인을 통해 재판 분리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법원은 첫 공판이 열린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어권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변호인의 염려를 알고 있다”면서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최씨와 마주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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