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을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근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 A씨는 ‘조속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상부에 보고했다. 임원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검토에 착수했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앞으로의 전환계획이라도 마련해 발표해야 한다는 급박감이 감지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에 마련된 일자리 상황판의 위력”이라고 했다.

앞서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여민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상황판에는 ▲고용률 ▲실업률 ▲청년실업률 ▲근로시간 ▲사회보험 가입률 ▲임금상승률 ▲임금격차 ▲저임금근로자 ▲비정규직 등 일자리와 관련된 모든 항목이 총 망라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일매일 지표를 확인해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다수의 국민여론은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의지’로 받아들였다. 또한 일자리 상황판의 내용을 국민들과 그대로 공유해 ‘소통’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다만 대통령의 입김이 직접 닿는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압박감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공공분야 81만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조직전체에 후폭풍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듯, 벌써 6개 공기업이 정규직 전환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의 첫 일정이었던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해 농협과 예금보험공사, 한국마사회, 한국동서발전, 교통안전공단 등이다. 이들 회사의 자회사들까지 정규직 전환이 예상되고 있어 전 공기업으로 정규직 전환 바람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기업도 자유롭지 않다. 앞서 SK브로드밴드가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 5,000여명의 정규직 채용을 약속했고, 롯데그룹도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여권에서는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민간분야 정규직 전환을 거듭 종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기피하던 공기업과 민간기업들이 정부가 바뀌자마자 ‘태세변환’을 한 것에 국민적 시선은 사실 곱지 않다.

다만 밀어붙이기식 정규직 전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비정규직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기업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동유연성의 확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여주기식 성과주의로 끌고 간다면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면밀히 검토해 단계적·점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정두언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되게 잘한다”면서도 “비정규직이 필요한 자리들이 분명히 있다. (정규직 전환을) 획일적으로 하면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지지율 90%에 육박하는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느냐”며 “적폐세력이라고 낙인찍히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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