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표(왼쪽)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회의전 장하성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관료 혁신 의제가 다른 개혁 과제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 눈앞에 닥친 주요 현안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소득성장주도 등 문재인 정부 대표 공약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서는 정부 각 부처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아직까지 새 정부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자체 진단이 나와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을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한 측면이 많다”며 “우리 정부는 촛불민심을 받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 아직까지 공직자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했다. 지난주부터 일부 분과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부처 업무보고를 청취한 김진표 위원장이 이날 작심한 듯 관료 집단에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업무 보고 문제점으로 ▲대통령 공약 베껴오기 ▲기존 정책을 바꾸지 않고 보고서 겉모양만 바꾼 표지갈이 ▲유리한 공약만 부각시키는 부처 이기주의 등을 꼽았다. 이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보수화된 관료들에게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것”이라며 탈관료를 예고했었다.

김 위원장이 이날 지적하지 않았지만 정부조직 개편을 앞둔 부처 간 기 싸움도 관료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손꼽힌다.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 금융위원회가 산하기관을 놓고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관가에 파다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기업벤처부로 위상이 올라간 중소기업청이 이 기회에 코이카 등 산업부 산하 기관과 금융위가 관리하는 신용보증기금 등을 중소부 아래에 두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새 정부 인사들과의 활발할 접촉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산업부와 금융위도 위상 격하를 우려해 적극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과거 잘못된 행정 관행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반성을 토대로 바꾸려는 진정성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느껴졌다”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지난 9년간 보수정부에서 관료들의 반개혁주의와 패쇄성이 노골화 됐다”고 했다.

이날 김진표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군기잡기’라는 해석이 나온데 대해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이 “공직자들을 탓 하는 게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집권여당 안팎에서는 이번에는 군기잡기로 끝나지 않고 관료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열린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대선 때 정보공개법 전면 개정·국민주도 개방형 정부혁신 플랫폼 구축 등 정부 문턱을 대폭 낮추는 공약을 제시했다. 표면적으로 국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나, 관료주의에 갇히지 않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김진표 위원장의 이날 전체회의 발언도 이런 맥락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정기획위 내에서는 김 위원장의 지적이 관료 길들이기 내지는 전쟁으로 비칠까 우려하지만, 사실 문재인 정부는 관료의 민주적 통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이해찬 의원이 ‘성공한 정부의 당·청 관계와 여당 의원의 자세’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당에서 사안별 의제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행정부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당이 당청관계에서 주도성을 가지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정당정치 강화 없이는 관료 주도의 국정운영을 견제하거나 당 주도로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이해찬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냈는데 당시에도 관료주의는 참여정부의 골칫거리였다.

그 당시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당 내분도 심해 관료를 견제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회의 때 공직자들의 관료주의를 질타하곤 했는데 일정 기간 군기 잡기로 효과가 나타났다가 일순간 없어졌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관료 출신들을 장관으로 발탁해 개혁 동력을 스스로 꺼트린 측면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사례 등을 참고해 장관 인선 시 부처 상황을 잘 알고 조직 장악에 능한 실천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을 대거 발탁한다는 인사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병 초빙교수는 “국정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정부에서는 관료보단 정치인이나 실천력 있는 외부 인사를 장관으로 뽑아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장관에 힘을 실어주면 관료주의 병폐라든지 적폐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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