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을 찾아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 개혁 드라이브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면서 기업들의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성장보다는 분배, 규제 완화보다는 강화에 초점을 둔 정책과 그에 걸 맞는 인사가 단행되면서, 기업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어느 때보다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공공분야에서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를 열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이 언제 어떤 식으로 민간 기업으로 확산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J노믹스라 일컬어지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바라보는 재계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비교적 높은 산업군인 건설분야의 고민이 유독 깊어 보인다.

◇ ‘10대 건설사’ 3명 가운데 1명 비정규직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들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은 26.6%로 집계됐다. 비록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업체만을 조사 대상에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지난해 전체 산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33%)에 근접한 수치다. 직원 3명 가운데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는 그 비중이 같다.

건설사에 비정규직이 많은 건 업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조업과는 다르게 수주 산업이다 보니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채용해 활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뜻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현장이 줄어들 때도 있고 늘어날 때도 있어 직원 수의 변동이 타 업종에 비해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산업개발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다. 전체 1,764명 가운데 726명(41.2%)이 기간제 근로자다. 직군별로는 기술직에서, 성별로는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1,258명의 기술직 근로자 중 39.5%(498명)이 비정규직에 속했다. 사무직과 기술직을 통틀어 242명의 여성 직원 중 무려 73.1%(177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작년과 재작년에 수주가 예년에 비해 많이 몰리면서 증설된 현장이 많았고, 현장에서 채용된 비정규직 인력이 증가해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면서 “직원 수가 다른 업체들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라 비율이 높을 뿐, 실제 비정규직 수가 많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37.3%)과 포스코건설(35.9%), 대우건설(33.3%)의 비정규직 비율도 높은 편에 속했다. 이들 3사 모두는 건축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기간제 근로자 비율이 정규직에 비해 수배 가량 높았다. 이어 ▲롯데건설(27.5%) ▲현대엔지니어링(26.8%) ▲대림산업(18.1%) ▲SK건설(17.0%) ▲삼성물산 건설부문(16.2%) 순이었다.

◇ 거세진 정규직 전환 압박… “기업들 모른 척 할 수 없어”

10대 건설사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된 GS건설(12.8%)은 플랜트와 전력, 건축, 인프라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정규직 비율도 비정규직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장의 정규직 증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 일선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규제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시장이 위축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내부적으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새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으로 재개발, 재건축과 같은 도시정비사업이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지금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정규직 확대가 건설사들의 우선과제가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업 입장에서 정부 방침을 마냥 모른 체 할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벌써 건설부동산 관련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축소 바람이 불고 있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정규직 전환 TF’를 발족시키고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A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분야에서 비정규직 감축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만큼, 민간도 그 영향을 받지 않겠나”라면서 “정부에서 기업에 정규직 확대를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에서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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