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는 38명의 야당 의원들이 올랐다.

“판사로 재직한 제 경험에 비춰 봐도 이 법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추미애) “테러방지법은 아예 대놓고 국민에 대한 사찰 권한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국민 여러분께서 분노하신만큼 4월13일 총선에서 야당을 찍어주십시오”(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 의원들은 ‘192시간25분’ 동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이어갔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추진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8일 간 이어진 야당 의원들의 호소에도 테러방지법은 새누리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정국’ 직후 지지율 23%(한국갤럽)로 그 해 최고치를 기록했고, 두 달 후 총선에선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됐다. 지난 29일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테러방지법이 다시 화두가 됐다. 서 후보자는 “(현재 테러방지법은) 실정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국정원 입장에서 현존하는 법은 이행하는 게 맞다. 국정원이 정치와 완전히 끊어진다는 확신과 인증을 받게 된다면 그런 (민간인 사찰) 우려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후보자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의 기조와도 차이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당은 “이것은 당연히 서 후보자의 생각이다. 개정이 추진될 경우 (테러방지법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둔다면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김병기)이라고 진화했다. 하지만 31일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은 단 1건이다. 지난해 12월 무소속 윤종오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테러방지법 개정 의지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당시 ‘필리버스터 스타’로 떠올랐던 의원들은 관련 법안을 아직 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규제프리존법)이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대표적인 ‘경제활성화’ 법안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한번 당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도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들은 규제프리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료·환경·교육 등 공공분야에서 규제가 완화될 경우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원안을 반대해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내각 인사들이 분명하게 문 대통령의 기존 철학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위장전입, 재산 증식 등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의혹 ‘따져 묻기’에만 열을 올렸다. 여당은 늘 그랬듯 내각 인사 ‘감싸안기’에 나섰고 제1야당마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인사 5대 원칙’을 놓고 ‘말꼬투리 잡기’ 비판만 한다는 원성을 샀다.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청문회에서 배제된 정의당에서 나왔다. “(청문회에서) 더 큰 문제엔 관심을 거두고 그 (위장전입) 문제에 집착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이제까지 민주당이 반대했던 정책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새 정부 들어서도 그 정책을 견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국무총리 내정자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정책과 관련된 문제를 따지지 않고 위장전입 같은 사안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다.”(노회찬)

내각 인사들의 말 한 마디는 단순히 ‘개인의 사견’이라고만 볼 수 없다. 후보자들의 철학과 정책 노선이 새 정부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후보자들을 향한 비판이 ‘흠집 내기’로만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해 3월1일 본회의장에 섰던 한 의원은 본회의장에 서서 “총선에서 승리해서, 국민 여러분께서 과반의석을 주시면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고 집권여당이 됐다.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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