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법인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이후 처음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했던 서흥이 여전히 같은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사외이사 제도가 우리나라에 본격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다. IMF는 우리가 경제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 하나로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꼽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사외이사는 최대주주나 경영진과 관련 없는 외부인으로서 회사 경영전반에 참여해 그들을 견제 및 감시하고,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이에 모든 상장법인들은 의무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과거 보도를 살펴보면 당시 상장사 중 가장 먼저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은 서흥캅셀(현 서흥)이다. 1998년 2월 27일 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이병길 사외이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0년대에 들어서자,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지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었다. 최대주주 및 경영진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를 선임해 붙박이로 앉혀두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사외이사가 최대주주 및 경영진의 지인이거나, 사외이사 자리를 전관예우 활용에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부터 사외이사라는 단어 앞에는 ‘장수’, ‘붙박이’, ‘허수아비’, ‘거수기’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의 폐해도 속속 드러났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안,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브레이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같은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국민연금은 재직기간 10년 이상 사외이사의 선임을 반대하는 의결권 지침을 만들었다. 주요 대기업의 정기주주총회 안건을 분석 및 평가하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역시 사외이사가 9년 이상 재직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이에 상당수의 기업들은 사외이사 물갈이에 나섰고, 이제는 재직기간이 10년을 넘는 사외이사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 19년째 자리 지킨 ‘원조 사외이사’

주목할 점은 상장법인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조치 이후 처음으로 선임된 ‘원조 사외이사’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2월 선임된 이병길 서흥 사외이사는 현재도 재직 중이다. 재직기간이 19년을 훌쩍 넘는다. 처음 사외이사로 선임됐을 당시 이병길 사외이사의 나이는 62세였다. 지금은 81세다.

이병길 사외이사의 임기는 2019년 3월까지다. 지난해 3년 임기로 재선임됐다. 6번째 재선임이다. 이번 임기를 채우면, 이병길 사외이사는 무려 21년 동안 서흥에 머무르게 된다. 서흥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의 2배보다 길다.

‘원조 사외이사’답게 활동은 무척 성실하다.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 가능한 2001년 이후 이사회에 모두 출석했다. 출석률이 100%다. 다만, 이병길 사외이사는 모든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했다.

물론 서흥의 이러한 사외이사 선임이 불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과 사외이사 역할론에 대한 물음표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가장 먼저 사외이사를 선임했던 곳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서흥은 의약용 캡슐을 만드는 곳으로 국내시장에서 95%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캡슐 형태 의약품에 서흥 제품이 쓰인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3,403억원에 영업이익 401억원, 당기순이익 307억원을 기록한 탄탄한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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