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왼쪽)과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전 축구대표팀 감독.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986년. 대한민국의 월드컵 연속 진출이 시작된 해다. 현재 30대 초반 이하로는 대한민국 없는 월드컵을 본 적이 없는 셈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에 꼽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칫 대한민국 없는 월드컵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막바지에 접어든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에서 우리나라는 A조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최종예선은 A·B조 2위까지 직행티켓이 주어지고, 각조 3위는 맞대결을 펼쳐 승리한 쪽이 중남미최종예선 4위와 마지막 티켓을 놓고 싸운다.

따라서 A조 2위라는 성적이 표면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보면 위기감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남은 상대는 조 1위 이란과 우리를 승점 1점 차이로 바짝 뒤쫓고 있는 3위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를 만나기 전 최하위 중국을 만난다.

우리가 이란을 잡고, 우즈베키스탄이 중국에 발목을 잡히는 시나리오가 현재로선 최상이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식으로든 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경기가 ‘사생결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최종예선에서 원정경기 1무 3패를 기록 중이다. 현재 조 2위라고는 하나, 낙관적이기 보단 비관적인 상황이다.

내용도 문제다. 지난 3월엔 중국에게마저 패했고, 가장 최근엔 카타르 원정에서 또 패했다. 그나마 이긴 경기도 모두 1점차 승리로, 졸전이 많았다.

결국 사단이 났다. 카타르전 패배로 거센 후폭풍이 불자 대한축구협회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했다. 또 그를 감독 자리에 앉힌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물러났다.

2014년 9월 부임한 슈틸리케 감독은 초반만 해도 ‘무실점 8연승’ 등의 신기록을 세우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선수기용과 전술, 내부기강 등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여론이 점점 악화됐다.

◇ 한국 축구계에 쌓인 적폐, 무엇이 진짜 문제?

▲ 최근 축구계를 향한 비판 속에 정몽규 회장 역시 뭇매를 맞고 있다. <뉴시스>
비판의 화살은 슈틸리케와 이용수 위원장 등 축구협회 인사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수장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또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축구계가 안고 있는 ‘적폐’를 방치한 채,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몽규 회장이 취임한 것은 2013년 1월이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축구계의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우리 축구계는 더욱 후퇴했다는 평을 받는다.

2013년 6월 선임된 홍명보 전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에서 큰 실패를 맛봤다. 홍명보 전 감독 본인의 책임도 컸지만, 성인대표팀 감독으로서 준비가 충분치 않은 그에게 월드컵이란 큰 대회를 맡긴 축구협회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학연’ 논란까지 제기됐다.

뒤를 이어 선임된 슈틸리케 역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역시 슈틸리케 감독 본인의 책임도 있지만, 제대로 된 수석코치 하나 붙여주지 못한 축구협회의 무능력도 문제의 한 축이었다. 특히 축구협회는 여론의 눈치만 보다 감독 교체 타이밍마저 최악의 시점으로 잡고 말았다.

이렇듯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선임된 두 감독 모두 실패했다. 특히 두 감독은 재임기간 중 ‘불통’이란 지적을 꾸준히 받았다. 이는 축구협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몽규 회장이 강조한 소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처럼 축구가 국민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를 주는 사이, 정몽규 회장은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축구협회 취임 이후 4년 동안 80개국을 방문하고, 500명이 넘는 세계 축구계 인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5월, FIFA 평의원에 당선돼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FIFA 집행부에 입성하게 됐다. 첫 번째는 그의 사촌 형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물론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현대가의 지원 및 노력은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몽규 회장의 ‘정당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책임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정몽규 회장을 향해 ‘축구계의 박근혜’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축구협회 회장 부임 이후에도 이어진 축구협회의 불통과 본인이 보여준 무능함 때문이다.

정몽규 회장은 FIFA에서의 ‘국제정치’에 능할지는 몰라도, 축구인으로서의 능력은 보여준 것이 없다.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부산 아이파크는 2015년 2부리그로 강등됐다. 지난 3월 중국전 패배 직후에도 정몽규 회장은 “슈틸리케 감독 경질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듯, 정몽규 회장에겐 현대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그리고 방치된 한국 축구계의 문제는 단순히 감독이나 기술위원장 교체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개혁 못지않은 큰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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