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1987년 10월27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찬반 국민투표 때의 모습. 이날 유권자의 78.2%가 투표했고, 투표자의 93.1%가 동의해 개헌안이 확정됐다.<뉴시스/동아일보>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우리나라의 정치 개혁은 제도가 문제이냐 사람이 문제이냐는 논쟁으로 해묵은 과제가 된지 오래다. 예를 들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말할 때 개헌을 주장하는 쪽은 대통령이 손에 쥔 권한이 너무 많아서, 제도 변경을 통한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개헌을 반대하는 측에선 제도는 문제가 없는데, 원칙을 어기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라고 반박한다.

선거구제 개편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극단의 양당제를 다당제로 전환해야만 국회의 대표성이 높아지고 그런 환경 하에서 타협의 정치가 싹틀 수 있다는 제도 찬성론이 있는가 하면, 청와대에 매인 여당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어깃장을 놓아야만 체면이 선다는 야당의 구시대적 관행이 문제라는 행태론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 개혁 논의는 계란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류의 유치한 논쟁으로 흐르곤 했다. 상식적으로 제도도 고치고 사람의 생각도 변해야만 정치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영논리와 입맛에 맞는 이론으로 무장한 우리 정치권은 출구 없는 미로에 스스로 뛰어들곤 했다.

여야는 지난 15일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와 함께 법안 심사권을 부여한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다루자고 합의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합의는 과거에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새 정부에서도 개헌은 어려울 것이라거나 이번에도 여야가 답을 찾기보다는 논쟁을 위한 논쟁에만 매달릴 게 불 보듯 뻔하다는 회의론자들의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 방침에, 가파른 전선을 그어놓고 대치 상태에 접어들은 집권여당과 야당의 모습만 봐도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린다. 양당제뿐 아니라 5당 구조 하에서도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해 협치의 기회를 번번이 놓친 여야가 어떤 명분으로 분권과 합의의 정치가 요체인 개헌과 선거제도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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