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던 힐크릭 강남점 외관의 모습. 현재 해당 매장은 폐점됐다. <구글 거리뷰>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일본산 골프웨어 브랜드 ‘힐크릭’을 둘러싼 판권 논란이 가열되는 조짐이다. 2년7개월 가까이 국내 판매권을 소유해온 한 중소업체와 일본 본사(그립인터내셔널)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힐크릭 사업을 운영해온 19H인터내셔널 측은 “일본 그립사가 블랙야크에 브랜드 판매권을 넘기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입장인 반면, 그립사는 “어디까지나 19H의 로열티지급이 안 돼 계약이 해지된 일을 일본 본사의 탓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번 일과는 무관한 블랙야크까지 끌어들이고 있다”고 반박한다.

◇ “블랙야크에 판권 넘기려 해” VS “계약 위반해놓고 억지주장”

브랜드 판권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힐크릭’은 일본의 골프웨어 전문 업체 그립인터내셔널이 소유한 브랜드다. 도쿄와 오사카의 이세탄, 한큐 등 주요 백화점에서 입점해있는 고급 골프 캐주얼 브랜드 힐크릭이 국내에 소개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와 현대 등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지만, 도중에 국내 판매권을 가진 업체가 바뀌는 등 사업에 차질이 발생해 결국 중단되고 만다.

한동안 국내 백화점에서 자취를 감춘 힐크릭이 다시 등장 한 건 2014년 무렵부터다. 골프웨어 ‘링스’로 업계에 이름이 알려진 백종수 대표가 설립한 19H인터내셔널(이하 19H)이란 회사를 통해서다. 힐크릭의 국내 에이전시 업체인 모던웍스와 19H의 합작으로 국내 골프웨어 시장에 다시 힐크릭이 발을 들일 수 있었다.

2015년 8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고급 브랜드를 지향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입점이 까다로운 백화점만을 공략했다는 게 19H 측 설명이다. 19H K이사는 “고급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메이저 백화점만을 고집했다. 이건 일본 본사의 방침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장 수는 올해 3월 대구 현대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전체 8개로 증가했다.

그렇다고 힐크릭의 매출이 좋았던 건 아니다. 그립사에 따르면 일부 매장에서는 사업 부진으로 매장 철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게 19H의 목소리다. 백화점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1~2차례 열리는 매출 활성화 방안을 논하는 자리가 열렸을 뿐이지, 매장 철수에 대한 상의는 없었다고 반박한다. 또한 런칭 브랜드의 매출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일정 기간 시간이 걸리는데, 의류업계에서는 통상 3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19H의 설명이다.

올해 S/S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 4월, 힐크릭의 국내 사업에 먹구름이 끼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 본사인 그립사와 19H 간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19H가 그립사 측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 20만 달러(한화 약 2억2,400만원)를 지급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립사는 “19H는 매년 로열티를 지연해 지급하려 했다”면서 “지난해부터 로열티 입금을 여러 차례 공지했지만, 끝내 기간 안에 지급하지 않았다. 계약 해지가 임박해서는 경고장도 보냈다. 또 신용장을 개설하라는 요구도 이행하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고 말했다.

◇ 힐크릭 계약 해지 전 일본 본사 찾아간 블랙야크

로열티 지급이 미뤄진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게 19H의 입장이다. 19H는 “백화점 오픈 및 상품 생산 등으로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히 들어가다 보니 자금이 충분하지 못했다”면서 “일본 본사에 이런 사항 등을 협의하려 요청했으나, 무조건 안 된다며 날짜를 엄수하라는 통보만 했다”고 전했다. 신용장에 대해서도 “회사 대표의 신용이 떨어져 신용장 개설이 불가한 상황이라, 제3자의 담보를 빌려 신용장을 개설하려 했지만 본사는 거부했다”고 해명했다.

이외에도 어떻게든 브랜드를 살리고자 하는 자사의 노력을 그립사가 외면했다는 게 19H 측 주장이다. 투자 및 M&A파트너로 한 유명 유아복 업체 소개했지만, 그립사는 무조건 계약해지만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서도 양측의 반응은 엇갈린다. “19H가 일본 본사의 허락 없이 상표권을 양도하려한 건 엄연한 위법행위”라는 게 그립 측 입장인데 반해, 19H는 “일본 본사의 동의를 구하려한 것이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라이센스 양도를 추진한 게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본 본사가 표면적으로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이면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게 19H의 주장이다. 영세한 중소업체가 아닌 볼륨이 큰 다른 기업과 힐크릭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자신들의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게 19H의 판단이다. 19H는 아웃도어 업체인 블랙야크에 힐크릭의 국내 판권을 넘기는 작업이 이미 상당히 진전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회사 K이사는 “지난 5월 24일 일본 그립사의 구와타 대표가 내한해 블랙야크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블랙야크와 그립사의 첫 협상이 이뤄진 시점도 19H와의 계약이 해지된 4월 이후부터라는 그립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K이사는 “지난해 블랙야크가 일본 그립인터내셔널 본사를 먼저 찾아갔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힐크릭 국내 에이전시인 모던웍스 대표는 “작년에 블랙야크에서 그립사를 찾아간 건 사실”이라면서 “그립인터내서널에는 힐크릭 말고도 다른 여러 브랜드들이 있다. 힐크릭 때문에 간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블랙야크도 에이전시와 같은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조사 차원에서 간 것이며 그립인터내셔널만 찾아간 건 아니다”며 “그립사와도 힐크릭이 아닌 다른 브랜드에 대한 상담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한편 힐크릭의 국내 판권을 둘러싼 논란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19H인터내셔널과 그립인터내셔널, 힐크릭의 국내 에이전시를 맡고 있는 모던웍스에 따르면 현재 그립사는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하고 19H를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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