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 웜비어 씨가 사망하면서 북미 관계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잔혹한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이렇다 할 입장 발표가 없는 상태다. <뉴시스/노동신문>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22살의 청년 오토 웜비어 씨가 사망했다. 북한에서 장기간 억류됐다가 고국인 미국으로 송환된 지 엿새만이다. 입국 당시 혼수상태였던 그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 유족들은 분노했다. 사망의 원인을 북한에서 당한 고문과 학대에서 찾았다. 실제 미국 의료진은 웜비어 씨의 뇌조직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머리 부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북한은 별도의 언급이 없었다. 다만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식중독(보틀리누스 중독증)에 걸린 상태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탓으로 돌렸다.

◇ 북한 억류 피해자의 증언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북한 측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언론들은 정부 관계자 등의 발언을 인용해 웜비어 씨가 이미 지난해 3월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북한이 이를 숨겨온 것으로 보도했다. 앞서 웜비어 씨는 지난해 1월 평양 여행 중 호텔에서 정치 선전문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웜비어 씨는 북한 측에서 준비한 기자회견에서 “제발 살려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의 석방은 억류 1년6개월여 만인 지난 13일 이뤄졌다. 코에 호스를 꽂고 들것에 실린 채였다.

웜비어 씨의 혼수상태에 이은 사망 소식은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다.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국가보위성이다. 국가보위성은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 격으로, 북한 내 정보 통제와 반체제 인사를 처벌하는 권력기관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심문과 고문이 이뤄지는 곳이다. 국가보위성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옥살이를 경험한 피해자들은 “고통스런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통일연구원에서 지난 8일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17’과 언론에 공개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고문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보위성은 죄인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알몸 수색을 벌인다. 이후 음부나 항문에 숨긴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수십 번 시킨다. 원하는 답변을 얻기까지 구타가 계속된다.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일은 일쑤다. 보위원들의 가죽 벨트와 각목 등이 체벌 도구로 이용된다. 2009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43일 만에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고문 후유증도 컸다. 미국인 에반 헌지커는 석방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살을 택했다.

▲ 웜비어 씨가 북한에서 장기간 억류됐다가 고국인 미국으로 송환된지 엿새만인 19일 숨을 거뒀다. 지난해 2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 당시만 해도 그는 건강상 문제가 없어보였으나, 혼수상태로 송환돼 충격을 안겼다. <뉴시스/AP>
건물 내부를 기억하는 피해자는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웜비어 씨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 그 역시도 재판장에 들어설 때 바닥만을 응시했다. 감방에 가까워지면 네발로 기어가야 한다. 감방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양반자세로 앉아 벽을 보고 있어야 한다. 자세가 흐트러질 경우 벌을 받는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었다. 곰팡이가 핀 옥수수죽이라도 먹어야한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같은 방 수감자들 모두가 처벌을 받는다. 쓰러진 사람도 구타를 피하지 못한다. 보위원들은 깰 때까지 구타한다.

◇ 김원홍 후임 이정록 부상… 김정남 피살사건으로 신임 얻어

사망사고는 보위원들도 바라지 않는다. 책임이 무거운 탓이다. 북한이 인권유린 국가로 비난을 받고 있는 데다 미국인의 경우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체적 고문은 되도록 삼가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국가보위성 최고 수장인 김원홍을 해임하고 차관급 간부 5명을 총살로 엄히 다스렸다. 양강도 근로단체 비서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자행한 고문과 허위보고 등이 그 배경으로 해석됐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주민에 대한 폭행, 고문을 그만두라’는 지시가 있었던 만큼 미국인 웜비어 씨의 혼수상태는 의도치 않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현재 국가보위성의 수장은 공석으로 알려졌다. 이는 후계체제와도 연관이 깊다. 북한의 3대 세습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국가보위성은 국가정치보위부, 국가보위부, 국가안전보위부, 국가보위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후계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해왔다. 그만큼 북한 내 권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체제가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국가보위성의 권한은 축소된 상태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정록 제1부상이 차기 국가보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남의 피살사건을 주도해 국기훈장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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