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가치 재정립 1차 토론회,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에 참석한 정우택(왼쪾 두번째)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정 대행,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뉴시스>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보수 적자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분위기 쇄신과 당원들의 축제가 돼야 할 7.3전당대회가 ‘자유한국당 5행시’로 비아냥거리로 전락했고, 일부 후보자들의 막말에 가까운 거친 입은 자기 얼굴에 주먹질 하는 꼴이라는 내부 자성이 나온다. 한국당은 새 보수에 대한 이념적 재정립과 노선 수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당 체질을 개선하기까지는 이런 혼돈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은 지난 19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열흘 일정으로 ‘자유한국당 5행시 짓기’ SNS 공모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전당대회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이벤트가 한순간 조롱거리가 됐다. 행사 취지는 “미우나 고우나 새 출발점에 선 한국당이 심기일전해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의 비난·욕설·조롱 섞인 5행시가 응원 글보다 화제를 모으면서 23일 오전부터 자유한국당 5행시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집권여당의 대표는 6월 임시국회 정상화에 머뭇거리는 한국당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5행시 짓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 센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자’유당 시절 독선 정치, ‘유’신시절 독재정치, ‘한’나라당 시절 독기정치, ‘국’민 고달픈 정치, ‘당’장 끝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긁어 부스럼 된 이벤트”라며 “누구 말대로 스스로 매를 버는 꼴”이라고 했다. 당 밖에선 지난 17일 서울에서 시작된 ‘한국당 해산’ 촉구 집회가 23일 대구에 이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5행시 이벤트가 매를 버는 모양이라면, 지도부 입성을 희망하는 후보자들의 막말은 스스로 침을 뱉는 격이라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홍준표 등 일부 후보자를 염두에 두고 “정치는 소위 세치 혀가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고, 잘못하면 세치 혀가 사람의 마음을 벨 수도 있다”고 점잖게 경고했다. 당 내부에서는 “막말도 전략적으로 한 두 번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지 입을 열 때마다 내뱉으면 효과도 떨어지고 손가락질 받는다”며 극약처방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감정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무슨 일을 벌여도 역풍을 받는 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당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추락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반박도 나온다. 한국당이 밑바닥으로 더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적 상상력과 쇄신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위해선 이에 상응하는 토대가 먼저 조성돼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의 집권여당도 그랬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권 이후 정권교체에 실패하면서 당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당 위기를 수습할 리더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반목과 갈등의 악순환이 거듭됐다. 그러나 미래의 리더를 발굴하고 이를 중심으로 당을 재정비한 끝에 최순실 게이트로 뒤바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권정당이 됐다. 이런 과정은 한국당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민주당이 더 세련돼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배경에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여당의 집권사(史)가 자리 잡고 있다.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보수 가치 재정립 1차 토론회 ‘보수의 미래를 디자인하다’에 참석해 “한국당이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됐지만 우리 보수는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 권한대행은 “새가 두 날개로 건전하게 날듯이 반드시 건전한 우리 보수의 재정립이 꼭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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