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역대 최대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이란에 방문했으며, 경제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이에 따른 대통령 탄핵은 조기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다.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해외순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방미에는 52명의 ‘경제인단’이 동행했다. 불미스런 이유로 제외된 일부 재벌 총수도 있지만, 미국과 관련된 대부분의 대기업 경제인과 중소기업들이 방미길에 올랐다. 이들은 향후 5년간 미국에 약 40조원을 투자하기로 해 미국의 환심을 샀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원사격 했다.

◇ 떠들썩했던 ‘이란 바람’의 실체는?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란 순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협상 타결로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란을 지난해 5월 방문했다. 이란은 세계경제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상태였고, 무려 236개사가 ‘경제사절단’에 합류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이란으로 향했다.

당시 청와대는 “경제 분야 59건 등 총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제2의 중동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이었다. 

가장 강조한 것은 에너지·인프라 부문에서 거둔 371억달러, 약 42조원의 수주성과였다. 371억달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석유·가스·석유화학 관련 사업이 9건·178억달러 △철도·도로·물관리 사업이 총 7건·116억달러, 발전 사업이 총 10건·58억달러, 의료 사업이 총 4건·19억달러다.

그렇다면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해당 사업들은 얼마나 진척이 됐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제로’다. 총 30건 중 실제 첫 삽을 뜬 곳은 단 하나도 없다. 기술교류를 제외한 실제 대규모 사업 중 본계약이 체결된 것은 단 2건에 불과하다. 대림산업의 ‘아스파한 정유시설 개선사업 재개’ 프로젝트와 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의 ‘사우스파12 2단계 확장 사업’ 프로젝트 둘 뿐이다. 각각 2조2,000억원, 4조4,000억원 규모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착공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금융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올 스톱’ 상태에 놓였다. 나머지 프로젝트 중엔 MOU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도 상당수다.

이란에 병원 7개를 짓는 의료사업도 금융조달 문제로 중단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금융조달 문제가 해결돼야 이후 절차가 진행될 수 있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조달 문제는 애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사안이다. 장기간의 경제제재로 자금이 부족한 이란의 특성상, 해당 사업들은 우리 기업들이 자금조달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사이의 기본여신약정 체결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측 수출입은행과 이란 측 중앙은행은 아직 기본여신약정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과의 경제교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란 경제제재 재개 시 조치 등 민감한 내용을 놓고 입장 차가 있다 보니 양국 관계당국 고위층 차원의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새 정부 들어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김동연 부총리는 최근 이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직접 면담한 바 있다.

이란 순방 후 성과로 알려졌던 371억달러(약 42조원) 중 본계약이 체결된 것은 단 2건, 58억달러에 불과하다. <시사위크>

문제는 금융조달이 해결된다고 371억달러의 프로젝트가 모두 실행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체결된 합의 중 대부분은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다. 지난해 이란과 MOU를 체결한 한 건설업체의 관계자는 “MOU 이후에도 여러 절차가 있고,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더욱이 이란은 국제정세 등 불확실성이 높은 곳이다. 가계약이나 본계약 체결 이후에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사업이 고꾸라진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여러 가지 검토할 것이 많이 때문에 성사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우리 같은 경우엔 현재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지난해 5월로 돌아가 보자. 4월 총선에선 야당이 승리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 이란 순방 결과가 대대적으로 알려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등했다.

하지만 이후 이란은 금세 잊혀졌다. 엄청난 ‘중동 붐’이 일 것이라 했지만, 정작 불어온 것은 몇 달 뒤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이었다. 현 시점에 되짚어본 ‘42조 이란 잭팟’은 사실상 모든 프로젝트가 성사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또 성사 가능성이 높은 일부 주요 프로젝트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변수를 넘어야 한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란 잭팟’은 신기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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