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재임시절 수사를 지휘했던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다각적인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4년 만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재임시절 수사를 지휘했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당 사건은 2012년 대선의 돌발 변수였다.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경찰이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전격 발표하면서 표심의 무게추가 흔들렸다. 공작 여부를 밝혀내는 게 이듬해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채동욱 전 총장의 첫 임무였다. 하지만 그는 수사를 지휘한지 5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갑작스럽게 불거진 혼외자 논란 때문이었다.

◇ 원세훈·김용판 기소하려다 신상 털린 셈

문재인 정부는 해당 사건을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TF에서 발표한 재조사 과제 12가지 중 2가지가 바로 국정원 댓글 사건과 채동욱 전 총장의 사찰 사건이다. 재조사가 본격화되자 채동욱 전 총장도 오랜 비밀을 털어놨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다각적인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채동욱 전 총장은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원칙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했으나 한계가 있었다”면서 “두 사람에 대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서 법무부에 수사·처리계획을 보고했는데 그때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은 곤란하다, 구속도 곤란하다는 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정 인물을 꼬집을 수 없지만 “당시 청와대와 법무부 쪽”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사실상 청와대를 겨냥한 말이다.

실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6일 방송을 앞두고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해 “총무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이 투트랙으로 움직였다. 이재만 비서관과 민정이 동시에 동원된 것은 ‘그분’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 혹은 묵인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채동욱 전 총장은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정원, 경찰, 한나라당 관계자들 사이에 엄청난 통화 내역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그는 “차명폰까지 전부 찾아서 수사했다”면서 “통화 내용까지 알 수 없지만 통화 내역 분석 결과로 봐서는 (경찰의 중간조사 결과 발표) 하루 이틀 전부터 얼마나 많은 긴밀한 교신이 있었는가에 대한 정황증거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채동욱 전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관계자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적용한 시점부터 박근혜 정권의 사찰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혼외자 보도에 대해 “언론사 혼자 취재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따라서 김용판 전 청장이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은 유죄를 입증할 핵심 증거, 즉 통화 내역이 제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채동욱 전 총장의 주장이다. 앞서 검찰은 김용판 전 총장이 경찰 내부에 중간수사 결과를 허위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원세훈 전 원장의 재판은 이제 막바지에 달했다.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오는 10일 결심 공판을 열고 선고기일을 정하기로 했다.

◇ “박근혜 정권 정통성과 직결될 수 있다”

채동욱 전 총장은 억울한 표정이다. 두 사람을 기소하려다 자신이 뒷조사를 당했다는 데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권이 신상을 털기 시작한 시점에 “공직선거법 적용 여부 문제로 많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 특히 혼외자 보도는 “언론사 혼자 취재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론 보도로 사찰 의혹이 알려지기 전까지 “전혀 감지를 못했다”고 밝혔다.

때문일까. 채동욱 전 총장의 발언에 날이 섰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와 같은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핵심 요소를 훼손한 국기문란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과도 직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당했다는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채동욱 전 총장은 “국정원의 데이터베이스는 삭제가 어렵고 대부분의 자료가 지금도 존안 돼 있을 것”이라면서 “관련자들에 대해서 충분한 전수조사를 한다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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