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컨벤션 센터 개관식에 참석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대중 정부 첫 국방부 장관이었던 천용택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쪽지 한 장을 은밀하게 받았다. 쪽지에는 ‘◯◯◯ 대령’이라고만 적혀있었다. 장군으로 진급시키라는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천 장관은 파악했다. 국방부로 돌아온 즉시 직접 준장인선 검토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메모로 전한 인물은 준장으로 진급시키기에 기수가 낮았다. 강행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위계질서가 중요한 군 내부의 반발은 뻔했다. 조직을 흔들었다는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쏟아질 위험도 있었다. 김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한 천 장관은 상황을 설명하고 ‘진급이 어렵다’는 취지로 보고 했다.

◇ 김대중의 방식 ‘전문가에게 맡기되 충성을 받는다’

보고를 받은 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알고 있습니다.” 이 답을 들은 천 장관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며 목 뒤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고 한다. ‘아 대통령님이 지금 내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충성시험을 통과한 천 장관은 국방부 업무에 전권을 받았고 이후 국정원장 등 요직을 맡게 된다.

이는 김대중 정부에서 관료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장악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집권경험이 없었던 김대중 정부는 전문영역은 전문가에게 전권을 줘서 일임하되 ‘충성’을 받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당시 내각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휘하 동교동계 인사들도 민주화 투쟁에 익숙했지 국가경영에는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직전까지 투쟁의 대상이었던 관료조직이 하루아침에 관리해야할 대상이 됐으니 앞이 막막했다. 관료들 입장에서도 김대중 정부가 어색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혼란스럽던 시기 김 대통령이 낸 아이디어는 관련 조직 내에서 평판이 좋고 인정받는 인물을 수장으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대신 그 한 사람의 충성만큼은 철저히 받아내자는 식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천재’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김 대통령의 이 같은 방침은 관료조직을 장악하는데 있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조직을 탈바꿈하거나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첫 정권교체의 혼란기를 무난하게 넘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민주진영은 불안하다’는 국민적 의심을 불식, 현 문재인 정부까지 세 차례나 정권을 잡는데 밑거름이 됐다.

◇ 시민사회·학계 인사로 근본적인 개혁 꿈꿨던 노무현

시민사회와 학계 인사를 대거 정부요직에 등용해 관료사회 장악에 나섰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반면 노무현 정부의 방식은 김대중 정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시민사회의 지원으로 당선된 노 대통령은 관료조직 수장에 시민단체 및 학계, 연구원 출신들을 대거 기용했다. 외부인사 수혈로 인한 내부조직의 변화는 불가피했고, 이에 따른 관료사회의 반발도 거셌다. 정치권에서는 이 과정에서 “깜이 안 되는 후보자들도 몇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관료사회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언론까지 돌아서면서 참여정부의 개혁노선은 완성하지 못했다.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두관 의원은 “참여정부가 구호도 좋고 의지도 충만했지만, 실력이 부족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파업이라는 게 있다. 노동자 파업이 일을 안 하는 것이라면, 자본파업은 투자를 안 하는 거다. 참여정부에서 대기업들이 자본파업을 하면서,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성장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열린우리당 등 정치권에서 규제강화 요구가 많았지만, 재정경제부 등 관료들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기업총수들과 오찬을 하면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던 장면은 관료사회에 백기 투항했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9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의 노선은 참여정부와 닮아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하고, 법무부 장관에 박상기 교수를 지명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당 안팎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참여정부의 실패를 직접 경험했던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에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무엇보다 국민여론이 참여정부 때와는 다르다. 당시는 ‘개혁’과 ‘정부조직 쇄신’의 당위성을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검찰 등 권력기관을 포함한 관료조직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다. 이를 지렛대 삼아 관료조직을 장악하고, 성공적인 정부로 남을지 여부는 오롯이 문재인 대통령의 실력에 달렸다. 출범 두 달여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관료사회 다잡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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