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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평양 주석궁에선’] 전혜성이 된 임지현… 탈북자들, 왜 비운의 선택을 하나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시사위크] 국내 방송에 고정출연하며 인기를 끌던 탈북 여성이 돌연 북한 관영 선전매체의 영상에 등장했다. 제3국을 통해 지난 6월 북한으로 재입북한 뒤 대남 비방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한국 정착 생활 중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나 공안당국도 사전에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당국이 사태파악에 나서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그를 알던 탈북인사들이나 지인들도 뜻밖이란 반응이다.

지난 16일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비방용 ‘우리민족끼리 TV’가 공개한 영상에 나타난 인물은 현재 평안남도 안주에 살고 있는 전혜성이다. ‘반공화국 모략 선전에 이용되었던 전혜성이 밝히는 진실’이란 영상에서 전혜성은 “2014년 1월 탈북했고 지난 6월에 돌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임지현’이라는 이름의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혜성은 TV조선의 북한 관련 프로그램 ‘모란봉 클럽’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또 올해 초에는 같은 방송국의 ‘남남북녀’에도 출연해 탤런트 김진과 가상의 부부 역할을 해 탈북 방송인 중에도 비교적 인지도가 높았다. 그런 그가 북한 매체에 등장해 “(한국에 가면) 잘 먹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 한국 생활은 술집을 비롯해 여러 곳을 떠돌았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있었다”고 대한민국 체제를 비방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전혜성이 등장하는 영상을 꼼꼼히 살펴보면 철저한 각본에 의해 인터뷰 형태의 프로그램이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TV 프로그램에서 밝고 자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북한생활과 탈북과정 등을 이야기하던 그는 북한영상에서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채 긴장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자신의 남한 생활을 ‘지옥’으로 묘사하며 북한이 그리워 돌아왔다는 주장과 체제선전을 펼치는 표정과 분위기가 어색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북한 아나운서도 굳은 표정으로 대담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이번 입북사태를 두고 탈북자 사회에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유인하거나 압박해 다시 돌아오도록 하려는 북한 공안당국의 공작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동안 북한은 탈북자 문제를 두고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유인·납치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또 이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듯 탈북자들을 다시 북한에 끌고 가거나 유인·입북시키는 공작활동에 주력해왔다. 우리 정부 당국은 북한 국가보위성 등이 탈북자들의 북한 내 가족들을 겁박해 탈북자를 어쩔 수 없이 입북하게하거나 북·중 국경에서의 만남을 포착해 납치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번 전혜성의 경우도 북한의 가족을 이용해 입북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구체적인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한국에 정착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탈북자를 대남선동에 내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민족끼리TV는 지난해 11월에도 ‘목메여 부르며 달려와 안긴 어머니 품’이란 제목의 좌담회를 열어 6명의 탈북자를 등장시켰다. 이번 전혜성의 경우를 포함해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한국정착 탈북자 입북 사례는 20명에 달한다. 3만 여명의 한국정착 탈북자 숫자를 고려하면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다, 북한의 공작 활동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 모두가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우리 국민이란 점에서다. 적어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 당국의 꾀임에 넘어가 입북을 강요받거나 납치당하는 경우는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정착 탈북자의 경우 국적취득 후에는 여권발급 등은 물론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한 자유로운 출입국이 보장된다. 중국으로 들어가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의 가족이나 친지·친구 등을 만난다 해서 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란 얘기다. 일부 탈북자는 과거 중국 등에 머물며 장사를 하거나 북한과 보따리상 등을 하던 채널을 재가동해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극소수 입북자를 의식해 많은 탈북자들의 자유로운 여행이나 해외에서의 사업활동을 막기는 쉽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입북 탈북자 문제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대남 비방과 체제선전을 위해 탈북자를 유인·납치에 방송에 내세우긴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남한 사회에 적지 않은 기간을 머물며 적응한 탈북자를 다시 북한 체제에 순응토록 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철저히 교육한다 해도 은연중에 ‘남조선의 발전상’을 발설하거나 자본주의식 생활 풍조를 퍼트릴 수 있다.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방송 등에 노출된 마당이라 부담스런 측면이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권단체나 NGO가 입북 이후 행적을 추적하거나 신병 문제를 제기할 경우 궁지에 몰리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북한 공안당국이 예전처럼 탈북자를 관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탈북자 숫자가 늘어나 일일이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심지어 북한에 들어갔던 탈북자가 북한 당국의 강요로 대남비방 방송 등에 등장한 뒤 재차 탈북해 한국에 돌아오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2015년 북한을 벗어나 한국에 정착했지만 이듬해 북한으로 몰래 돌아갔던 40대 탈북 남성이 지난달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탈북자는 경기도 화성에 정착해 살다가 지난해 가을 입북해 11월 말 북한 우리민족끼리TV에 출연했다. 당시 “남조선에서 지옥과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며 한국 사회를 비난했지만 이번에는 부인까지 데리고 한국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탈북자 단속을 강화했다. 또 한국 정착 탈북자들을 북으로 다시 끌고 가거나 유인하기 위한 공작에 전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경제난, 한류 문화의 확산 등으로 등을 돌린 주민들은 탈북 행렬에 나서고 있다. 이미 몇몇 탈북자를 유인·납치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응을 하기에는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자유로움과 풍요를 맛본 탈북자를 다시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건 북한 체제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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