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광역급행버스의 추돌 사고 주원인이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라고 하네. 전날 18시간 근무를 했던 운전기사가 5시간도 못 자고 나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고 하는군. 전국 44개 버스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준공영제 시내버스 운전자는 하루 10시간 26분, 민간업체 시내버스 운전자는 하루 16시간 46분, 민간업체 시외버스 운전자는 하루 17시간 8분을 근무하고 있네. 시외버스 운전자들은 한 달에 309시간 33분을 일해서 연간으로 계산하면 3700시간이 넘더군. 이건 완전히 살인적인 노동이야. 그런 운전자들이 졸면서 운전하는 차를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승객들은 또 뭔가? 시외버스 운전기사들의 이런 노동 실태를 알면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 타기 힘들 것 같네.

우리나라 노동 현실이 외국 사람들이 ‘일 중독자 Workaholics’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참담하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1,766시간인데, 우리나라는 2,113시간으로 347시간 더 길었네. 독일(1,371시간)과 견주면 742시간 더 일했고, 노동시간이 긴 그리스(2,042시간)와 비교해도 305시간 더 일했어. 하루 10시간 일한다고 계산해도 독일과 그리스 사람들보다 보다 1년에 각각 두 달 보름과 한 달 더 일하고 있는 거야.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정상’으로 생각하는 지독한 일중독 사회에서 살고 있네. 그래서 은퇴 후에도 남들 눈치 보면서 놀아야 하는 사회야.

우리가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 정종연 시인의 <그 도시의 아침>으로 확인해 보세. 이 시는 2년 전에도 소개했네만… “다급한 발걸음이 때론 뻘밭의 게떼처럼 왁자하다. 도대체 되물을 틈도 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실천하듯 용감하게 대륙횡단열차에 타려는 듯, 적색불이 깜빡깜빡해도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질주하고 마는 군상들 - 지하도든 전철이든 혹은 도로 안팎에서 뛰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다가 혹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에서도 안절부절못하는 그 도시의 아침은 속도들의 질주가 눈부실 뿐… 선잠에 취한 채 가방을 둘러멘, 양복을 걸친, 혹은 양장을 입은 사람들 모두가 아수라 경주 속에 내달리는 한 마리 적토마,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햇살에 포획된 아침, 잠시도 멈출 수 없어 돌진하는 저 뼈아픈 눈동자들.”

아침마다 보는 우리들 모습 아닌가?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 예전보다 물질적으로는 훨씬 더 부유한 나라가 된 게 확실한데, 왜 우리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해야만 하는 걸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해 고치려고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행복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일세.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농경시대에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1년의 반 정도는 그냥 쉬었을 거네. 물질적 풍요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이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가난했던 것은 사실이야. 사람들의 수명도 지금보다 훨씬 짧았어. 100년 전만 해도 아무리 근대화가 앞선 나라라 할지라도 평균 수명이 50살을 넘지 못 했지.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도 80살이 넘었네.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오래 살고 있는 거지.

그러면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전체 시간에서 경제적 수입을 위해 일하는 노동시간을 제외하고 여가나 휴식 시간으로만 비교하면, 근대화 전과 후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나는 거의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요즘처럼 20살이 넘어서까지 마지못해 해야 하는 공부 시간을 ‘노동’으로 간주하면, 근대인의 휴식 시간은 엄청나게 줄어들지. 그래서 근대화와 수명 연장으로 인해 늘어난 시간은 결국 ‘노동시간’밖에 없다는 결론이야. 물론 이게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네. 신자유주의시대에는 많이 가진 사람들도 부자로 계속 남거나 더 부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일을 해야 하니까.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마지막으로 위 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아수라 경주 속에 내달리는 한 마리 적토마”라는 구절의 ‘아수라’가 뭔지는 알지? 아수라는 인도의 최고신들 중 하나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 또는 여덟인, 아귀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의 총칭일세. 시인의 눈에는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이 싸우길 좋아하는 귀신들처럼 보인 거지. 여기서 싸운다는 건 ‘일’을 말하는 거구. 우리가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 아닐세. 다음 편지에서는 우리가 왜 이런 ‘일중독’에서 벗어나 더 놀아야만 하는지 이야기해보세. 여름휴가 꼭 다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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