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경영공백과 신뢰도 하락으로 흔들리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갈수록 태산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국정 농단 사태’와 맞물린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 파문’을 거치면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유례없는 경영 공백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까지 발견돼 또 다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 초유의 경영 공백 사태에 조직 위태위태 

국민연금이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2,200만 명의 가입자가 매월 알뜰하게 연금을 내온 탓에 기금규모는 578조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중책을 짊어진 국민연금은 수개월 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공백 문제다. 우선 공단의 최고 수장인 이사장직은 7개월째 공석 상태다.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말 구속됐다.

여기에 최근 기금운용본부의 수장까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연금은 유례없는 경영 공백 사태를 맞이했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17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최근 인선 실패 논란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인력 공백과 조직 혼란으로 시름하던 기금운용본부 조직은 또 다시 위기에 빠졌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부터 고위급 인력의 대규모 이탈로 업무 공백에 시달려왔다. 부랴부랴 내부 승진과 공모를 거쳐 공석을 채웠지만 이마저도 잡음이 발생했다. 해외대체투자실장은 허위 경력 기재가 밝혀지며 임명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금운용본부장까지 사퇴 의사를 밝히다보니, 직원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모와 심사 절차를 걸쳐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를 결정할 책임자급 수장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인선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금운용본부장 임면권을 가진 공단 이사장 인선은 복지부 장관 임명 절차가 완료된 뒤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 추락한 기관 신뢰도… 기금 고갈 불신만 더 키우나 

이에 당분간은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돼야 하지만 이 또한 불안한 시선이 적지 않다. 직무대행직은 실장급 인사 중에서 맡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부분의 실장급 인력들이 임명된 지 1년이 갓 됐거나 최근에야 선임된 인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수장 공백 사태를 최소화하며 운용본부를 이끌어갈 만 인사를 발탁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투자처 발굴과 운용 정책 업무에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도 만만치 않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까지 발견돼 충격을 줬다. 청와대는 20일 현 국정상황실에서 추가로 발견된 박근혜정부 청와대 문건 목록을 공개했다. 현 국정상황실은 이전 정부에서는 정책조정수석실의 기획비서관실로 사용됐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문건에는 △삼성물산 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방향 △해외 헤지펀드에 대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 대책 검토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주장에 대한 쟁점 및 정부 입장 점검 등이 내용도 들어있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파문은 기관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사건이다. 가뜩이나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노후 자금이 활용됐다는 논란은 국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2013년 정부의 제3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에 따르면 9% 보험료율의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적립규모는 2043년 2,561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44년부터 적자로 2060년에 소진된다. 납세자연맹은 지난 4월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이 애초 2060년에서 9년 앞당겨진 2051년이라는 암울한 분석 결과까지 내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국민연금의 총체적인 위기는 기금고갈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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