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검찰에서 증거로 추가 제출한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에 대해 “국정원 간부들과 한 달에 한번 나라 사정을 걱정하며 나눈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24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증거로 추가 제출한 녹취록에 대해 “국정원 간부들과 한 달에 한번 나라 사정을 걱정하며 나눈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범죄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직시절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선거 개입과 언론 통제를 지시한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후보 검증부터 온·오프라인 선거 지원 “잘되도록 챙겨라”

주목해야 할 녹취록은 4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주재한 ‘전 부서장 회의’ 가운데 2009년 6월9일과 12월18일, 2011년 11월18일, 2012년 4월20일자 발언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선거를 앞둔 국정원 직원들의 업무 지시가 녹취록에 기록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0년 6·2지방선거 공천까지 관여했다.

2009년 6월9일자 녹취록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방선거가 11개월 남았다”면서 “지자체장이나 의원 후보들을 잘 검증해 어떤 사람이 (정부에) 도움이 되겠느냐 (판단해) 시·구의원에 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95년 때도 본인들이 원해서 나간 사람 거의 없다. 국정원이 나가라고 해서 나간 것”이라고 부연했다.

19대 총선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1년 11월18일자 녹취록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12월부터 예비후보 등록 시작”이라고 언급한 뒤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되도록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친정부 인사의 당선을 도우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오프라인이 제일 중요하고, 온라인 쪽에는 우리 직원들이 나서서 계속 대처해 나가야 한다”면서 “우리의 의견을 잠깐 붙여놓으면 뒤에서 SNS를 통해 퍼져나간다”고 말했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보기관”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도 선거개입에 대한 법적 문제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듬해 12월 열린 18대 대선에서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 댓글을 남기는 등 여론 형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선거 외에 언론까지 통제하려고 했다.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기사를 못나가게 하든지, 아니면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언론이) 잘못할 때마다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의 할 일이지 그냥 가서 매달리고 어쩌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09년 12월18일자 녹취록에서다. 

여권에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근거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MB정부가 국정원을 사유화했다는 얘기다. <뉴시스>

비판 기사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주문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예상되자 “한나라당이나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일이 벌어질 텐데,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대처하지 말고 지금부터 신문 곳곳에 가서 준비해 놓았다가 땅하면 그날 아침 신문에 실리도록 준비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원장 입에서 얘기 안하면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다”며 직원들을 질책했다.

◇ “국민 심리전 중요” MB 정부로 번진 국정원 사유화 논란

결국 타깃은 국민이다.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조장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이 담긴 2012년 4월20일자 녹취록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은 “발언의 앞뒤 문맥을 보면 ‘국민에 대한 안보교육 강화’라는 말이 들어있기 때문에 안보를 위한 지시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선거 관련 발언 또한 ‘여야 불문’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는 점에서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파장은 컸다. 당장 여권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MB 정부에서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2009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4년간 국정원장을 지냈다. MB의 임기 내내 곁을 지킨 셈이다. 이는 MB 정부가 국정원을 사유화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만약 조기에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녹취록은 빛을 볼 수 없었다. 당초 녹취록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국정원에 요구했으나, 당시 국정원은 보안을 이유로 상당 부분을 삭제해서 검찰에 넘겼다. 삭제된 부분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적폐청산 TF팀에서 복원했다. 재판부는 녹취록을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유죄 선고를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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