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건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부터 28일까지 양일간 재벌총수를 비롯한 대기업 경영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동시에 대기업들의 경영상 어려움을 듣는 소통의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영인들과의 대화를 주도하며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27일 호프미팅에서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 대해 “갓(God)뚜기”라며 공개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최근 오뚜기는 ‘비정규직 제로 정책’ ‘라면 등 식품가격 동결’ ‘정당한 상속세 납부’ 등의 내용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갓뚜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아주 잘 부합하는 모델 기업”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자리에 함께했던 타 재벌총수들에게는 ‘본 받으라’는 일종의 훈시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 당부에 재계 “중소기업과 상생 약속”

비공개 회동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고 갔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 등 대기업들의 협조를 당부했고, 머뭇거렸던 경영인들도 묵직한 경제현안을 언급하며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각 기업 대표들이 공통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언급했다”며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을 약속하고, 반대로 각종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비공개 회동 내용을 전했다.

회동을 마친 후 기업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8일 자신의 SNS에 “정부정책이나 해법, 기업의 입장과 현안들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며 소통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세계가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고 적었다.

대통령이 재벌총수를 청와대로 초청해 경제정책 협조를 당부하고, 기업들이 화답하는 모습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CEO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68일 만에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났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8월 재벌총수들과 오찬행사를 가졌다. 정권은 투자촉진 등 기업의 역할을 주문했고, 기업은 규제완화를 포함한 민원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용됐다.

◇ 재벌개혁 칼자루 쥔 문재인 정부, 힘의 원천은 ‘촛불’

차이는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쥐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재벌대기업과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재계 사이 주도권 경쟁은 치열하지 않았다. 비슷한 경제기조를 유지했던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의 ‘슈퍼리치 증세’ ‘공정위 위상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은 재벌대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부와 재계의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자신의 의도대로 대화를 이끌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자명하다. 2005년 7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점검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부는 시장을 공정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노무현 정부가 재벌개혁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논란은 컸다. 진보진영의 비판이 쏟아졌고,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참여정부가 삼성에 항복했다”고 표현했었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으로 자본과 시장에 있었던 권력은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사회로 넘어갔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계기로 촉발된 촛불시민의 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 시키는데 이르렀다. 촛불시민의 분노는 부패한 정치권력에 머물지 않고 불공정 사회, 빈부격차, 실업난 등 전반적인 사회 부조리로 번졌다. “돈과 부모도 실력”이라던 정유라의 말이 촉매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선거통은 “촛불집회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참여인원이 100만 명을 넘은 순간 이미 정치 주도권은 거리로 넘어가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자신감은 권력이 시민사회로 넘어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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