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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에세이] H에게-일자리 나눔을 위한 단상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이스털린의 독설(Easterlin’s Paradox)’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1974년에 미국의 경제사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가 한 논문에서 주장한 이론으로 간단하게 요약하면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야. 먹고사는 데 충분한 정도까지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 함께 늘어나지만,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이 소득증가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야. 이스털린 교수는 자기 이론이 잘 들어맞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했다네. 1인당 국민소득(GDP)이 3,000달러도 안 되는 최빈국 부탄 국민들이 자신들보다 10배나 더 부자인 한국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97% 대 5%)이 월등하게 높은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이스털린의 역설이야.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펴낸 보고서들의 많은 통계 수치들이 한국인들의 행복감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네. 그럼 왜 우린 50여 년 전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높지 않을까?

난 우리 국민들이 돈 버는 일에 열중하느라 여가와 휴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한 마디로 놀 시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희소한 자원 중 하나이네.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면서도 가장 적게 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날마다 학교와 학원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드나들어야 하는 어린 학생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타임푸어(Time Poor)야. 마음 놓고 편하게 자신과 가족, 친구, 공동체를 위해 쓸 시간이 없어. 그러니 친구를 만나도 폭탄주로 마시지. 빨리 취해서 자야 하니까.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회원국 노동자들보다 1년에 무려 347시간을 더 일한다고 지난 편지에서 말했지? 일하는 시간이 길면 잠이라도 충분히 자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야. 2015년 OECD 생활시간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61.1분으로 조사대상 26개국 중 가장 짧았네. 하루에 8시간도 자지 않는다는 거지. OECD 평균은 501.1시간이었고, 가장 긴 나라는 에스토니아로 530분이었네. 게다가 한국 직장인들의 통근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었어. OECD 회원국의 하루 평균 편도 통근시간은 28분인데 비해 한국은 58분이야. 하루에 두 시간 정도를 집과 직장 사이의 길 위에서 보내고 있는 거지.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많으니 행복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부탄의 모든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5시에 ‘칼퇴근’을 해야 한다고 하는군. 그래야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한 것 아닌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판단하기 힘들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만 해왔던 한국 사람들의‘일 중독증’을 치료해줄 것도 같네. 인공지능,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나노기술, 로봇, 유전공학 등이 중심이 된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현존하는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없어질 거라는 뉴스는 들었지?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미국 일본 등 15개국 370개 기업 인사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까지 총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총 510만여 개의 일자리가 감소한다네. 단순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사라진다는 거야. 다음은 어느 학자가 말했다는 미래의 공장 모습이야. “미래의 공장에는 개 한 마리와 직원 한 사람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개는 사람이 장비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고, 사람은 개 먹이를 주기 위해 필요하다.” 씁쓸하지?

좋든 싫든 일자리가 줄어들면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일하는 게 불가능해지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나눌 수밖에 없어. 어쩌면 외국 언론들로부터 일 중독증의 나라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우리들에게는 4차 산업혁명이 일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 1월에 발표한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 방안’ 보고서에 의하면, 주 40시간 근무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주 5일 근무를 적용하면 일자리가 51만~70만개가 늘어나고, 주 52시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상한제를 실시하면 일자리가 59만~77만개가 증가한다네. 일자리가 줄어들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남은 일자리를 나누는 게 순리야. 단언컨대, 우리 사회의 일자리 부족과 노동에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눔’밖에 없어. 다른 소리는 다 권력과 자본의 속임수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임금노동의 형태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네. 만약 어떤 정치인이나 학자가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는 순진한 바보이거나 질이 나쁜 거짓말쟁이일 확률이 높아. 다시는 완전고용의 시대가 오지 않는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지 딴소리하면 되나. 주 30시간 노동제를 강제로 실시한다고 해도 일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는 없어. 그래서 여기저기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나오고, 일 개념의 확대 주장도 하는 거야. 돈 버는 활동만 ‘일’이 아니라는 거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해보세.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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