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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청바지 인류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하도겸 칼럼니스트

“청바지가 잘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여보세요 날 좀 잠깐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변집섭 2집 ‘너에게로 또다시’에 실린 노영심 작사·작곡의 ‘희망사항’이다. ‘청바지’만 나와도 변집섭의 ‘희망사항’이라는 걸 알정도로 히트를 친 이 노래가 나온 1989년은 전 세계 청바지 시장을 뒤흔들었던 게스 청바지가 처음 국내에 상륙한 해이기도 했다.

폴과 모리스 마르시아노 형제가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론칭한 게스는 빨간색 테두리를 두른 흰색 역삼각형 바탕에 물음표가 박혀있는 로고로 청바지가 상징하는 ‘젊음’과 ‘반항’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여성의 몸매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섹시한 청바지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어떤 책은 아무리 내용을 잘 써도 신문에서 서평이나 신간소개에서 다뤄주지 않는다. 요즘 인문서적 대부분이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인 정보, 아니 ‘책의 홍수시대’가 되었다. 출판업계의 불황도 그렇지만, 신문사들도 웬만한 책이 아니면 그다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듯 싶다.

번역서 ‘청바지 인류학’(다니엘 밀러·소피 우드워드 지음 |오창현 외 옮김, 눌민)

그런데 최근에 출판된 번역서 ‘청바지 인류학’(다니엘 밀러·소피 우드워드 지음 |오창현 외 옮김, 눌민)은 정말 많은 신문은 물론 TV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내용도 특별하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희망사항’처럼 충분한 매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밀러는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의 대도시를 다닐 때마다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100명의 옷차림새를 관찰했다고 한다. 언제나 절반이 넘게 청바지를 입고 있다고 한다. 2008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3.2일 꼴로 청바지를 입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 같다. 지금 서울에서는 그리 많은 청바지는 목격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인류학적 연구방법에서 찾게 해준 게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의상을 넘어선 청바지라는 아이콘을 통해 시대의 상징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애플로 돌아왔고, 애플에서 모든 순간을 즐기고 있다”며 오랜만에 수척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스티븐 잡스는 매번 애플의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이면 청바지에 셔츠를 입은 전세계 서민 소비자들을 향한 계산적인 패션을 보여줬다.

‘청바지 인류학’의 역자 오창현.

잡스를 포함하여 저자는, 회사나 파티에 가기 위한 옷을 고민하고, 몸매가 멋있게 보이는 옷을 찾고, 애인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물건을 구입하고 버리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한 청바지를 다루면서 근대성의 핵심을 건드린다. 개인은 어떻게 해서 청바지가 전 세계에 퍼졌는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청바지를 통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불안, 저항, 거부를 표출하는가? 청바지는 몸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어떻게 해서 청바지가 사회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양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질문과 해석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로 ‘증여의 수수께끼’,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 등을 번역한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청바지에서 찾아낼 것 정말 많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의 물건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라고 전했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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