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보고받거나 지시한 일이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줬으나, 여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스스로 ‘무능’을 택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에 잇따라 기용되며 유능한 인재로 불렸으나 정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자 “보고받거나 지시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청와대와 문체부 내에서 자행됐다는 얘기다.

해당 의혹과 관련, 상사였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일한 부하직원 등 6명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죄 선고는 조윤선 전 장관이 유일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상식이 안 통하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 “투명인간 아니면 왕따” 

블랙리스트 사건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조윤선 전 장관이 ‘개략적’으로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나, “관여하거나 이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증인들의 진술이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2014년 6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된 조윤선 전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한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과 그의 후임 정관주 전 비서관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보고가 미흡했거나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박준우 전 정무수석은 말을 바꿨다. 블랙리스트의 시초가 된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한 그는 조윤선 전 장관에게 바통을 넘기면서 인수인계 당시 “표정이 어두워졌다”고 진술했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데 회의감을 나타냈다는 것.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TF 얘기를 했다면 개략적으로 했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라면서 “중요한 업무가 아니어서 설명을 안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비록 조윤선 전 장관이 정무수석 되기 전부터 TF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중단시킬 권한도 있었다”는 점에서 방조와 공범의 혐의를 물을 수 있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의 유죄 판결도 조윤선 전 장관에겐 부담이다. 그는 임명 초 정무수석실의 지원 배제 대상자 선별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윤선 전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다.

뿐만 아니다. 조윤선 전 장관은 2016년 9월 문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에도 문화예술정책과로부터 ‘문화예술계에 대한 균형 있는 지원방안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보고서엔 진보성향 작품·단체에 대한 문예기금의 적절성, 각종 지원 사업에 대한 이념적 균형성 등 특이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정치적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와 단체의 사전 배제 검토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 무죄를 선고 받은 조윤선 전 장관은 지난달 27일 출소했다. 그는 “(재판부가)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법원에 항소했다. <뉴시스>

이에 따라 재판부도 조윤선 전 장관이 “청와대 지시로 문체부에서 좌파·반정부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 명단을 관리·운영하고 있음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죄는 빗겨갔다.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해당 업무를 “자신의 업무로 인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이에 대해 판사 출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심리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은 “조윤선 전 장관이 투명인간 내지는 왕따 피해자가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할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재판부는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막기 위해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과 우수도서 선정 과정에서 심사위원 추천 문제 등에 개입한 것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조윤선 전 장관의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재판부의 주장이다. 조윤선 전 장관은 출소길에 취재진과 만나 “(재판부가)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법원에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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