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승계는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큰 그림’이 상당부분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 재정리’와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이 대부분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 그림의 최종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승계’의 시점과 방식만 남게 됐다.

현대로보틱스는 지난 2일,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12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 주식 공개매수 청약의 결과다.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어너지시스템의 기명식 보통주식을 보유 중인 주주들을 대상으로 해당 주식을 건네면 신주를 발행해주는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사실상 정몽준 이사장을 위한 이 유상증자는 역시 정몽준 이사장의 참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현대건설기계 및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지분은 모두와 현대중공업 지분 10.15% 중 9.83%가 현대로보틱스 지분으로 교환됐다.

이를 통해 정몽준 이사장의 현대로보틱스 지분은 10.15%에서 25.80%로 상승했다. 재단과 임원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더한 수치는 13.34%에서 28.17%로 올랐다. 정몽준 이사장의 현대로보틱스 지배력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기존엔 13.37%씩 보유 중이던 지분이 현대중공업 27.84%, 현대일렉트릭 27.64%, 현대건설기계 24.13%로 증가했다. 이로써 지주회사로서의 요건인 ‘상장 자회사 지분 20% 이상 보유’를 충족하게 됐다.

◇ 분사 이후 지주회사 체제 확립… 정몽준은 지배력 강화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6개사 분사를 전격 시행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이 품고 있던 여러 사업분야를 각각의 회사로 독립시켜 경쟁력은 키우고, 리스크는 줄이겠다는 설명이었다.

이후 이번 유상증자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현대중공업의 지배구조 재편은 비로소 그 윤곽이 확연해졌다. 기존의 ‘정몽준 이사장→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하이투자증권), 현대오일뱅크’ 지배구조가 ‘정몽준 이사장→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하이투자증권),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오일뱅크, 현대글로벌서비스’의 구조를 갖추게 됐다.

향후 지분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지만, 정몽준 이사장이 지주회사 현대로보틱스를 통해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큰 틀은 유지될 전망이다.

주목할 점은 앞으로의 행보다. 현대중공업은 승계 문제가 핵심 이슈인 곳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인 반면, 장남 정기선 전무는 후계자로서의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기선 전무는 초고속 승진과 달리 회사 지분 보유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현재도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승계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고, 정권교체와 함께 재벌 일가에 대한 감시의 눈이 매서워졌다.

현재로선 승계 시점이나 방식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일련의 과정에서 정몽준 이사장이 얻은 효과 중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분사와 지배구조 정리를 통해 지배력이 강화됐다.

기존 현대중공업 시절, 정몽준 이사장이 직접 보유한 지분은 10.15%에 불과했다. 여기에 현대미포조선과 재단들이 보유한 지분이 11.16%였고, 임원들의 지분까지 더해 총 21.33%를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승계가 이뤄졌다면, 증여세로 인해 지분이 5%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정몽준 이사장은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 지분을 25.80% 갖게 됐다. 이 상태로 증여가 이뤄진다 해도 13% 가까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여기에 특수관계인 지분을 더하면 15% 이상이 된다.

이와 관련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재벌일가의 편법승계 문제가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계기로 큰 변곡점을 맞았다”며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봤을 때,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비용과 부담을 줄이며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