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극중주의'를 내걸었다. 안 전 대표의 극중주의는 ‘extreme center’ 혹은 ‘radical centrism’을 ‘안철수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지난 3일 당 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 ‘이미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천정배 의원과 다른 강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보통 ‘극좌’나 ‘극우’에 대해서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렇지만 반면에는 ‘극중’이 있습니다. 정말로 치열하게,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에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 그것이 바로 ‘극중주의’입니다. 이미 극중주의로 정권을 잡은 게 프랑스이고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이 노선에 대해 국민들께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 전 대표의 극중주의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모호하다” “실체가 없다” “생소하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애초에 극단, 끝을 뜻하는 ‘극(極)’과 중용, 중도를 뜻하는 ‘중(中)’을 합쳐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자 안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이 극중주의로 1997년 IMF사태를 극복해냈다는 주장이다.

“제가 극중주의라고 표현한 취지는 양극단을 배제하고 우리가 중심축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국민의당이 처음 시작했을 때 합리적 중도개혁 정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IMF를 3년 만에 극복한 그 노선입니다. 그 노선에 따라서 국익과 민생에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는 뜻입니다.”(광주MBC ‘시선집중 광주’)

안 전 대표 측 인사들도 극중주의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송기석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안 전 대표가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좌우 대결 위주의 이념대결이다. 극중주의라는 것은 그런 이념대결에서 탈피해 말 그대로 국민과 민생을 위해 ‘중도실현주의’를 극도로 실천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며 “중도를 기반으로 개혁을 통해 합리적 진보나 개혁적 보수까지 껴안아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했다.

◇ “정치학 교과서에도 없는 말”

안 전 대표의 극중주의는 ‘extreme center’ 혹은 ‘radical centrism’을 ‘안철수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최명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3의길 ‘실천중도의 길’, Radical Centrism 밖엔 답이 없어 보인다. 얼마나 임팩트 주고 싶으면 極中主義(극중주의)라 했을까. 치열하게 실천하는 중도의 길을”이라는 글을 올려 설명을 보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 전 대표가 극중주의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봤다. 파키스탄 출신의 좌파 사상가 타리크 알리의 저서 ‘극단적 중도파’를 번역한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안철수가 ‘극중 extreme center’을 내건 것은 아주 솔직한 태도다. 그러나 극중 노선은 마크롱의 승리와 함께 전 세계를 석권하는 것이 아니라 마크롱의 조기 몰락과 함께 사망할 운명”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들며 극중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 ‘extreme center’ 즉 ‘극중’을 뜻하는 이 말은 외신들이 마크롱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끌어온 개념이라는 것이다. 미국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마크롱의 가장 큰 도전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극단적 중도’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19세기에 이미 그랬듯이 극좌로 극우로 급격하게 요동칠 것이다” “중도주의라는 명칭은 그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다”는 등 비판적인 맥락에서 극중주의를 인용했다.

김홍국 경기대 국제정치학 겸임교수는 “정치학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최근 마크롱의 당선으로 인해 ‘극중주의’ ‘radical centrism’이 대두됐다. 모든 가치나 현안에 집중할 때 가운데로만 집중한다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프랑스엔 과거 보수·진보 정당이 있었는데 사회당의 몰락으로 프랑스 국민들은 정치적 염증을 느꼈고 그 사이를 마크롱이 파고든 것”이라며 “우리 현실에서 과연 쓸 수 있는 개념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가 연대를 염두에 두고 바른정당과의 철학적 접점을 찾아낸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바른정당도 합리적 보수를 이야기하면서 중도 노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의당 40석과 바른정당 20석을 합쳐 60석 정도를 유지하면서 확실한 제3세력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중을 보여준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나 공천, 정기국회에서 여러 가지 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안철수스러운 정치 실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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