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교수의 과학기술혁신본주장직 사퇴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고위 인사 중 첫 사례가 됐다. 공직후보자까지 포함하면 세번째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문재인 정부는 조직 개편을 통해 미래창조과학부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꿨다. 미래부 산하에 있던 실장급 과학기술전략본부는 과기정통부에서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로 격상됐다. 실제 과기혁신본부장이 집행하는 예산만 20조가 넘는다. 국가연구개발 예산권과 심의 및 조정, 연구 성과 평가 등을 함께 다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폐지된 과기혁신본부의 위상과 역할을 바로 세워 우리나라의 IT 및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출발부터 발목이 잡혔다. 과기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된 박기영 순천대 교수 때문이다. 임명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 동안 그의 이름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당장 과학기술계의 반발을 샀다. 임명 반대 서명운동에 나선 젊은 과학자들의 모임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혁신에 어울리지 않은 이름이다. 오히려 그 이름은 과학기술인들에겐 악몽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에 대한 상처다.

◇ 황우석 사태 이후 12년… “과학계는 기억하고 있다”

박기영 교수는 사건 발생 당시 참여정부에서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냈다.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256억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지원하도록 적극 나섰던 그다. 대국민 사기극에 책임이 작지 않은 셈이다. 비리도 터졌다. 문제의 논문에 기여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과 황우석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과제 2건으로 연구비 2억5,000만원을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파문 이후 박기영 교수는 직책에서 물러났으나, 처벌은커녕 학교 차원의 징계도 없었다. 그는 공개 사과 없이 순천대에 복직했다.

이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비판이 거세다. “황우석 사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냈는지, 과학기술계를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ESC가 지난 9일과 10일 이틀간 진행한 반대 서명에서 과학자와 일반 시민 총 1,851명이 참여했다. 서울대 교수 288명도 11일 임명 반대 성명서를 냈다.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조작 사실을 밝혀내는 데 역할을 한 과학인 온라인 커뮤니티 브릭(BRIC)은 “과학계는 12년 전의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기영 교수에 대한 비판 여론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안 된다’고 외쳤다. 야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그간 새 정부 인사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던 정의당마저도 반대했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는 때늦은 사과를 전하면서도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자진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11일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박기영 교수는 당초 과학기술전략본부장직에서 사퇴할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파문이 계속되자 임명 닷새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뉴시스>

이제야 여권은 마음을 놓는 눈치다. 그간 박기영 교수의 직무수행에 의문을 가졌던 터다. 실제 여권 안팎에서도 박기영 교수에 대한 평판이 좋지 못했다. 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정치적 욕심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기영 교수는 19대 총선에 이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했다. 19대에선 탈락했고, 20대에선 비례 23번을 받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선 문재인 캠프 정책자문을 맡은 바 있다. 

◇ 박기영의 항변 “임기 중에 일어났다고 가담자 아냐” 

뒷말이 무성했지만 발언대에 오르는 인사는 없었다. 당청 갈등으로 비칠 수 있다는데 우려에서다. 다만 “박기영 교수를 누가 왜 추천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만 나왔다. 곤혹스러운 것은 청와대도 다르지 않았다. 박기영 교수의 추천자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차후에 따질 문제”라며 언급을 피해왔다. 자칫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기영 교수의 자진사퇴로 짐을 덜게 됐다. 

박기영 교수는 사퇴의 변을 통해 억울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임기 중에 일어났다고 해서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면서 “제가 노력했던 꿈과 연구 목표 그리고 삶에서 중요시 여겼던 진정성과 인격마저도 송두리째 매도됐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 번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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