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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최근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사건이 속속 드러나면서 군 고위 장성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대다수 국민들은 박찬주 대장 보다 부인 전씨가 보여준 상식 밖의 행태에 더욱 분노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전군에 일반화하는 것은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본다.

3군을 통틀어 1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이번 사건과는 달리 대부분의 장성과 그 부인들은 일반병이든 공관병이든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박찬주 대장 부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다수 장성급 지휘관들은 전역 후에도 병사들과 오래도록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승우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75, 육사 21기)은 1990년 무렵 17사단장 시절 군 최초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 군에 선풍을 일으켰다. 그는 평소 ‘이등병은 군의 보배’라며 신병교육 단계에서부터 ‘깨어 있는 병사’로 교육을 시켰다. 이등병이 없으면 대장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하급자라도 상관의 명령이나 지시에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 왜 그런지 분명히 알고 난 다음에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물어 볼 권리가 있고, 상급자는 그 질문에 답변해 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폭행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단장 취임 직후부터 끈질긴 집념으로 군의 오랜 악습인 구타와 각종 가혹행위를 근절하는 데 성공했다. 사단장이 훈련병들을 모아놓고 ‘구타는 왜 없어져야 하는지’ 장시간 공개토론을 벌일 만큼 강한 의지와 집념을 보여줬다.

그는 구타·가혹행위 문제를 장교나 부사관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다. 다른 지휘관들과 다른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병사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하나하나 확인했다. 병사들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단장 공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4명의 공관병이 있었는데, 그는 병사들에게 기계적인 허드렛일에 매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직접 책을 사다 주며 독서하고 사색할 것을 권장했다. 깨어 있는 병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군에서도 가을의 낭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굳이 낙엽 같은 것을 쓸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당시 직장에 출근하던 사단장 부인은 주말에 아들·딸을 데리고 공관에 나와 공관병들과 같이 놀곤 했다. “사모님께서는 평소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저희들에게 가끔 사제 옷을 사 주시곤 했다”고 공관병들(이국진·김석환 예비역 육군 병장)은 기억했다.
 
이들은 이번 공관병 갑질 의혹 사건에 대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은 제대 후 지금까지 사단장과 꾸준히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진정한 힘은 하부 구조에서 나온다”는 신념의 지휘관이었다.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떠난 그에게 사단 병사들은 수 백 통의 손 편지를 보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60, 육사 37기)의 병사들 사랑도 각별한 데가 있다. 전방 27사단장 시절 사병들이 전역할 때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 밖에 없다”며 사병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창군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 등 귀빈들의 부대 방문을 앞두고도 병사들에게 대청소 같은 보여주기 식 잡일을 일체 시키지 않았다. 그대로 실상을 보여 주고, 병사들의 복지와 환경개선을 위해서는 장군 체면 가리지 않고 떼를 써가며 얻어내곤 했다. 폭설이 내릴 때면 병사들과 함께 제설작업에 나섰고, 행군할 때도 대열의 앞·뒤를 오가며 격려했다.
 
작년 7월 특전사 연병장 전역식장에서는 행한 전역사는 명연설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저의 군 생활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부하들에게 이 모든 고마움을 전한다”고 시작한 뒤 “언제나 최선을 다했으나 부족했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준 것은 바로 나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을 내게 주신 대한민국과 육군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로 전역사를 마쳤다.
 
부하사랑을 이보다 더 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에게 병사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편히 잠 재워야 하는 귀한 존재들이었다. 60년대 배고프던 시절 병사들의 급식에 손을 댄 간부들을 일벌백계한 것으로 유명한 한 신(韓 信, 1996년 작고) 전 합참의장을 보는 듯하다. 그 대신 훈련은 규정대로 혹독하게 시켰다. 그 점 또한 한 장군과 닮았다.
 
그는 특전사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천리행군을 실전적이고 실용적인 행군으로 확 바꿔 놓았다.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고 회식을 제한하며, 가족시간을 대폭 늘려주는 한편 외출·외박을 보장하고 성능 좋은 사제장비 사용을 허용했다.

박찬주 대장과 육사 동기생인 그는 1983년 10월 아웅산 테러 현장에서 피투성이가 된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목숨을 구한 일화를 남겼다. 당시 전 중위는 백 의장의 전속 부관이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현재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와 존스 홉킨스대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오는 10월 귀국할 예정이다.

군에서 장교·부사관, 그리고 병사들 상호간에 존중과 배려하는 자세를 키워나가자는 의미에서 ‘상존배 운동’을 실천한 지휘관도 있다. 정두근 전 6군단장(66, 3사 7기)은 사단장 시절부터 병영에서 ‘상존배 운동’을 전개, 명령-복종으로만 획일화된 군대에서 소프트 파워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몸소 보여줬다. 상존배 운동은 5대 실천 과제로 ▲상호 존중하는 언어사용 ▲정감어린 인사말 나누기 ▲경청하고 칭찬하기 ▲공중도덕 지키기 ▲나누고 봉사하기 등을 준수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구타·가혹행위는 물론 언어폭력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고, 각종 사건·사고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강압적인 군대식 통제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였다. 병사들의 사기와 군기가 떨어지기는커녕 사기충천하고 자발적인 군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사단법인 상존배운동본부의 총재를 맡으면서 이 운동을 범사회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03년 당시 윤광웅(74, 해사 20기) 국방장관의 공관장으로 근무한 김세종(59, 예비역 해병대 원사) ‘사람사는세상’ 공동대표는 당시 휘하에 7~8명 정도의 공관병을 두고 있었는데, 윤 장관 부부와 가족들은 병사들과 격의 없이 가족처럼 생활했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특히 공사(公私)가 분명해서 일과시간 이외에는 철저히 관용차량 대신 개인 차량을 이용했다고 한다. 또 부인용으로 나온 자동차는 아예 반납했다. 김 대표는 “그 때 공관병들이 지금도 매년 모임을 갖고 돈독한 유대를 다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가끔 부하들의 주례를 서곤 했는데 한 번은 공관병 누나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기도 했다고 한다. 윤 전 장관은 “공관병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지휘관과 부인, 그 가족 구성원들의 인성과 사람됨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병사들을 사랑한 별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90년대 초 육참총장 시절 ‘병주주의(兵主主義)’라는 말을 처음 사용할 만큼 병사들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고 실천했던 김진영(78, 육사 17기) 현 성우회장, 지금까지 1,000명 가까운 부하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고도 일체의 사례를 거절한 독특한 성품의 민병돈(82, 육사 15기) 전 육사교장 등은 병사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 장군들이었다.

이들은 또 5공화국 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때 여당 후보에 표를 몰아주라는 상부의 암묵적 지시를 사단장 권한으로 수용하지 않고 병사들 자유의사에 맡겼다. 그 결과 한직으로 밀려난 적도 있다.
 
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육사 5기, 2013년 작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은 어떤가? 채 장군은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베트남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이 누워 있는 사병묘역에 자신을 안장해 달라고 유언했다. 건군사상 처음 있는 일로, 병사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어려운 결단이었다.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시작된 공관병 운영제도 개선문제는 이제 송영무 국방장관의 신속한 대체방안 제시로 조만간 모종의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선의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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