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사진 찍으러 다니다보면 난처한 경우들을 자주 만나네. 그 중 하나가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사진동우회 사람들을 만났을 때야. 꽃을 찍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꼭 묻는 사람이 있지. “아저씨! 조리개 값을 얼마로 놓고 찍으세요?”라고 물어 F 2.8로 찍는다고 대답하면, 왜 그렇게 찍느냐고 나무란다. 자기 선생님이 꽃을 찍을 때는 언제나 F 5.6으로 고정해 놓고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참 묘하다. 그런 기본적인 기술도 모르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가 무척 안쓰러운가 보다. 자기들 끼리 모여 나를 슬금슬금 힐끗거리며 웃기도 한다. 매우 불쌍하다는 듯이… 그러면 나는 조용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지.

요즘 제1야당이라는 자유한국당과 그 당의 홍준표 대표를 보면 산에서 자주 만나는 사진동우회 사람들이 생각나네. 혹시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좀 어려운 사자성어를 알고 있나? 노래에 따라 거문고 현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기 싫었던 옛날 중국의 제나라 사람이 거문고 현을 떠받치는 기러기발에 아교를 칠해 고정해버렸기 때문에 한 가지 노래만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야. 그때 그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비유해서 이를 때 쓰는 말이지. 아직도 박근혜당의 이미지가 강한 자유한국당에 어울리는 사자성어야.

“지금 대한민국은 독선, 오만을 고집하는 ‘일방통행 정부’의 인사무능, 안보무능, 경제무능으로 인해 국민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출범 100일이 지난 문재인 정부를 안보·경제·졸속·좌파·인사의 ‘신적폐’ 정부로 규정한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8월 24일과 25일에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 교육원에서 있었던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찬회를 마치면서 채택한 결의문 중 일부일세. 시작한지 100일을 갓 넘긴 새로운 정부를 ‘신적폐’로 규정하다니 괘씸하지 않는가? 각종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자기당 소속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일세. “적폐세력”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정당이 새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나 지났다고 저렇게 후안무치하게 행동해도 되는가? 아직도 국민들의 여론은 싸늘하기만 한데…

같은 날 발표한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정례조사를 보면, ‘잘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79%이고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4%였네. 자유한국당의 주요 지지층이라 말할 수 있는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태극기부대의 주력인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높았네.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데도 문재인 정부를 ‘신적폐’라고 비난하는 무모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탄핵으로 정권을 잃은 자기들은 ‘구적폐’이고, 국민의 지지율이 높은 새 정부는 ‘신적폐’라는 뜻인가? 언어의 혼란일세.

저런 걸 보면,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 것 같네. 홍준표 대표가 지난 7월 26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띄운 글을 보게나. “오늘자 대구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TK지역 샘플 1700개를 추출했는데 자유한국당 43.7, 민주당 24.2, 바른정당 10.4, 정의당 3, 국민의당 2.6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동안 일부 관제 여론조사가 얼마나 조작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과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해서 검사도 되고,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까지 꿈꾸는 분이 이렇게 무지하고 아집까지 강하다니… 그가 대표로 있는 자유한국당이 옛 새누리당의 이미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막말로 자유한국당이 TK지역에서 1등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거기서도 1등 못하면 그만 당을 해체하고, 그 당 국회의원들은 모두 정계 은퇴해야지. 보수적인 지역에서 1등 했다고 공신력을 인정받은 한국갤럽 같은 여론조사 기관을 국정여론조사 따내기에 급급하다거나 민심조작으로 좌파정권에 협잡하는 나쁜 기업으로 매도까지 하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폭언일세.

‘긍즉변, 변즉통’이라고 했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말이야. 우리 정치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모든 정치세력들이 변해야 하네. 물론 국민들도 명실 공히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거듭나야 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가치만이 진리라고 고집하는 세력들은 극좌든 극우든 이제 시민들이 나서서 정치의 장에서 사라지게 만들 때가 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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