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관계자들이 통상임금 소송 판결 이후 함께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경영계와 노동계가 주목해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한 소송인만큼,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판결은 무려 6년 만에 내려진 1심 판결이었다.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24명은 2011년 정기상여금, 일비, 중식대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이에 따른 미지급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장·야간·휴일수당 등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그동안 기아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시키지 않은 채 수당을 산정했다. 전체 임금에서 정기상여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포함시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수당 차이는 상당했다.

이와 관련해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보수는 통상임금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관련 소송이 잇따랐다. 2013년에는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이 판결과 함께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문제가 있다면 제외할 수 있다”는 이른바 ‘신의칙 원칙’을 덧붙였다.

고정적으로 지급된 상여금이 통상임금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반면, 신의칙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될 여지가 있었다. 이에 기아차를 비롯해 소송에 휩싸인 기업들은 신의칙 원칙을 앞세워 맞섰다. 노조가 해당 사안을 인지하지 못한 채 수년간 요구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큰 비용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앞서 이뤄진 비슷한 소송의 판결에서는 신의칙 원칙 적용 여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이번 판결 역시 신의칙 원칙을 인정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재판부는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노조가 청구한 1조926억원 중 4,223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비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규모가 줄었을 뿐, 핵심인 신의칙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지급임금 지불시 기업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기아차의 주장은 일축했다.

특히 기아차가 주장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근로기준법상 보장되는 정당한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려진 1심 판결에 기아차 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기아차 노조는 신의칙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의 판단에 의미를 부여하며 “법을 지키면 경영이 어렵다는 경영계의 주장을 청산해야할 적폐로 지적해왔는데, 이를 재판부에서 인정한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법부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논평을 통해 “통상임금 미적용 등의 이유로 기아차는 그동안 수십조원의 이익을 남겨왔다. 오늘 판결은 그 중 극히 일부의 체불임금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라며 “사용자단체들은 오늘 재판부가 신의칙 적용을 배제하면서 적시한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이를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한 판결문을 새겨듣길 바란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번 통상임금 소송 분은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지급했어야 할 임금체불 채권이었다”며 “그동안 정부의 위법한 행정지침을 등에 업고 자본이 부당하게 착복한 노동의 대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기아차와 경영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아차는 판결 직후 “법원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판결에 따른 부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재판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과 기간까지 향후 더해진다면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아울러 이번 판결에 따라 추정되는 약 1조원의 부담을 즉시 대손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하고, 이로 인해 3분기 적자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재판부가 신의칙 원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이번 판결의 여파가 수많은 협력업체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전경련 역시 이번 판결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산업경쟁력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기아차는 판결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으며 기아차 노조는 내부회의를 거쳐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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