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휴스턴.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은 ‘허리케인 하비’라는 이름의 악몽을 꾸고 있다. 국제 적십자협회는 인도·네팔·방글라데시 3개국에서 1,200명의 사람들이 홍수로 목숨을 잃었으며 4,1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인 뭄바이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다.

◇ 허리케인과 홍수는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나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는 CNN에 실린 기고문에서 기후변화와 허리케인의 관계를 흡연과 암의 관계에 비유했다. 전자가 후자를 무조건적으로 발생시키진 않지만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인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역사상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허리케인이 정말 기후변화에서 기인한 것인지 심도 깊게 분석했다.

BBC의 환경전문기자 맷 맥그레스는 29일(현지시각) 기사에서 “기후변화가 하비 사태의 주범이라는 확증은 없지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는 말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휴스턴과 맞닿아있는 멕시코만 해수의 온도가 1980년에 비해 1.5도 따뜻해진 것은 여러 정황증거 중 하나다. 화학법칙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 대기는 7%의 물을 더 붙잡아둘 수 있다.

CNN도 28일(현지시각) 기사를 통해 같은 주제를 다뤘다. 허리케인 하비의 빠른 성장속도와 기록적인 강수량을 강조한 CNN은 그 원인을 분석하며 해수면의 상승에 주목했다. CNN이 자문을 구한 환경 NPO의 기상학자 숀 서블렛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해수면의 높이는 7인치(약 18센티미터) 상승했다. 이는 강력한 규모의 폭풍해일과 해안지역의 홍수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CNN의 설명이다.

기후변화가 파괴적 자연재해에 책임이 있다면 ‘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허리케인 하비나 남아시아를 덮친 홍수 또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프레데릭 오토 교수는 BBC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허리케인 하비가 보여준 폭우도 더 자주 관측될 것이라는 경고를 전달했다. 다만 동 기사는 이번 재해가 기후변화와 무관하며 휴스턴의 인구 과밀이 문제를 키웠을 뿐이라는 일란 칼먼 UCL 연구원의 의견도 함께 실었다.

◇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제기

지난 수요일 크리스 쿠오모 CNN 앵커는 자신의 방송을 찾은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고문과 약간의 언쟁을 빚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와 허리케인의 연관성을 논의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앵커에게 콘웨이 고문이 “우리는 지금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데, 정말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돌려준 것이다. 쿠오모 앵커는 “그 둘은 같은 문제일 수 있다”고 응수했다.

아마도 이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발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국민에게 매우 가혹한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며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BBC와 CNN이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처럼 허리케인 하비가 정말 지구온난화의 소산이라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상당 부분 정당성을 잃는다. CNN은 이번 허리케인으로 미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적게 잡아도 400억달러 가량이며 조사 기관에 따라 그 수치는 1,900억달러(약 213조원)까지 높아진다고 보도했다.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기후 재앙의 경제적 악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공개적 논의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받는다. OECD는 지난 5월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과 성장을 위한 투자’ 보고서를 통해 파리기후협약이 제시했던 목표가 50% 확률로 달성될 수 있도록 친환경산업에 투자할 경우 G20 국가의 2050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2.8%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방지한 효과까지 감안하면 친환경발전의 실질적 경제성장효과는 4.7%로 크게 높아진다.

한편 BBC의 또 다른 환경전문기자인 로저 해러빈은 지구온난화를 법적으로 규제하려는 환경 전문 법률가들의 노력을 기사로 전했다. 현재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시하려는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지만 일부 법조계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온실가스를 과다 배출한 기업과 정부관계자가 법정에 서는 세상이 그가 제시한 미래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