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촉발한 여성환경연대와 유한킴벌리의 유착 의혹은 생리대 안전성 논란의 본질을 흐린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생리대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정작 안전성에 대한 논의 보다 시민단체와 정부, 기업간 공방전에 치열한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며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특히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촉발한 여성환경연대와 유한킴벌리의 유착 의혹은 생리대 안전성 논란의 본질을 흐린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여성환경연대는 왜 ‘릴리안 피해 사례’를 수집했을까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만 해도 ‘여성건강 보장’이 핵심이었다. 여성환경연대 역시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과 위험성을 알리고, 정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시험 결과’ 발표의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여성환경연대는 “상위 5개 업체의 10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위해물질인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s)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독성물질이 검출된 업체와 브랜드 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조사의 목적은 생리대 전수조사와 제도 개선’이라는 게 이유였다.

정작 소비자들의 관심은 ‘어떤 생리대가 문제인지’였다. 여성에게 생리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인 만큼, 내가 쓰는 생리대도 위험한 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은 당연했다. 여성환경연대는 그러나 업체·제품명 공개를 거부했다.

당시 여성환경연대는 제품명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간과 비용 문제로 일부 제품만 선정해서 조사했기 때문에 브랜드를 공개했을 경우 조사대상이 된 제품에 불리할 수 있고 △현 시점에 여성환경연대가 조사한 유해물질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브랜드를 밝혀도 리콜 등의 보상이 되지 않는데다 △미국 피앤지(P&G)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 수준보다 이번 국내 생리대 검출 수준이 훨씬 양호했으며 △무엇보다 이번 검출시험의 목표가 특정 브랜드나 제품이 아니라 생리대의 유해물질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 및 제도 마련과 개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환경연대는 시험을 진행한 김만구 강원대 교수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깨끗한나라 릴리안’을 거론하며 파문이 커지자, 이를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사건’으로 명명하고 릴리안 사용 피해사례만 수집한 뒤 피해를 주장하는 제보자와 함께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여성환경연대는 분명 “상위 5개 업체의 10개 제품에서 모두 위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깨끗한나라’만 정조준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업체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공은 식약처로 넘겼다. 식약처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 일회용 생리대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문제는 사실 깨끗한나라 릴리안만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성환경연대는 다른 업체들은 밝히지 않은채 깨끗한나라만 정조준했다. <뉴시스>

◇ 유한킴벌리는 이번 논란에서 자유로운가

생리대 안전성 논란은 여성환경연대 운영위원 중 유한킴벌리 임원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여성환경연대의 발표에 유한킴벌리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시험을 진행한 강원대에 유한킴벌리가 후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파문의 배후에 유한킴벌리가 있다는 ‘음모론’도 확산됐다.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유해물질 시험비용 출처도 의혹에 무게를 실었다. 여성환경연대는 2016년 한 포털사이트의 소셜펀딩을 통해 시민들의 후원으로 재원을 마련했고 설명했지만, <세계일보>는 지난해 여성환경연대가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진행한 소셜 프로젝트(총 7개) 중 생리대 실험검출과 관련된 사업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소셜펀딩 모금액이 아닌 민간기업, 즉 유한킴벌리 자금으로 실험비를 조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배경이다. 여성환경연대는 “민간기업의 후원이나 금전적 지원을 일절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으나 시험비용의 출처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여성환경연대가 5개 제조사를 상대로 ‘생리대 성분표기’ 조사를 실시한 뒤, 유일하게 유한킴벌리를 ‘비교적 우수한 기업’으로 분류한 것도 의혹을 키웠다. 이 단체가 유한킴벌리를 ‘우수기업’으로 선정한 것은 생리대 성분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는 게 이유다. 성분을 공개했다는 점이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었지만, 상당수 소비자들은 이를 유해물질이 없는 ‘안전한 생리대’로 인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성환경연대는 깨끗한나라를 ‘많은 개선이 필요한 기업’으로 규정했다.

여성환경연대의 발표는 결과적으로 업계 1위(점유율 57%,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인 유한킴벌리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반대로 유일하게 업체명이 공개된 깨끗한나라는 큰 타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유한킴벌리의 ‘깔창 생리대’ 및 ‘꼼수가격인상’ 이슈는 이번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에 묻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유한킴벌리가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무섭게 세를 확대하고 있는 깨끗한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유한킴벌리와 여성환경연대는 최근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정황은 민간기업과 여성단체간의 유착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취지 자체는 모두의 공감을 사기 충분하다. 정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 요구 역시 타당했다. 하지만 섣부른 시험결과 발표는 엉뚱한 오해와 의혹을 낳았고, 유한킴벌리와의 관계는 생리대 안전성 시험에 대한 취지나 신뢰성에 큰 생채기를 냈다. 조만간 식약처의 전수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들의 석연찮은 관계에 대한 의혹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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