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리대 안전성 논란’의 핵심은 실제 생리대에서 검출된 물질들이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 시민단체간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본질은 외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서울 도심 한 대형마트 생리대 코너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이번 ‘생리대 안전성 논란’의 핵심은 실제 생리대에서 검출된 물질들이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 시민단체간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본질은 외면되고 있다. 온갖 의혹만 난무하고, 서로 ‘네탓’만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도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유해물질 검출=인체유해, 인과관계 규명이 중요

앞서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는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를 통해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일회용 생리대에서 스타이렌·벤젠을 비롯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국제암연구기관(IARC)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이번 생리대 검사 결과 검출된 VOCs는 고농도 또는 장기간 노출될 때 신경, 근육 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벤젠은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이다. 스틸렌은 여성 호르몬을 증가시켜 자궁암 등을 유발하고, 천식을 야기할 수 있는 발암 가능 물질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유해물질 검출 사실만으로 인체 유해 여부를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같은 유해물질이라고 해도 노출경로나 피부흡수 정도에 따라 위해성이 모두 다를 수 있어서다.

문제는 생리대 안전기준에는 문제가 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안전과 관련된 기준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생리대 관련 규제는 △폼알데하이드 △색소 △형광물질 △산․알칼리 규정뿐이다. 문제가 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안전과 관련된 기준 자체가 없다. 다른 화학물질도 여성의 중요부위와 접촉될 때 어느 정도가 안전하거나 혹은 위험한가에 대해서는 정해진 기준은 없다.

일례로, 이번 시험 결과 생리대 제품에서 검출된 스타이렌 양은 0.63~38.08ng(나노그램) 사이였다. 스타리엔의 건축물 실내 공기 권고 기준 300㎍/㎥보다 많이 낮은 것이지만, 이를 인체에 직접 접촉되는 생리대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김대철 식약처 바이오생약심사부장도 “건축 관련 법령 등의 허용기준은 건축자재의 ‘새집증후군’ 대비를 위한 것으로 준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식약처는 이달 말까지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에 대한 전수조사를 끝내 업체명 품목명,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량, 위해평가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험 방법 등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사진은 서울 도심 한 대형마트 생리대 코너에서 직원이 생리대를 진열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기준도 없고 시험방법도 부재… 결과 신뢰할 수 있을까

현재 식약처는 국내 시판중인 생리대 896종(56개사)을 수거해 전수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안전과 관련된 기준도 없고, 공인 실험방법도 없는 만큼 결과를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식약처 발표에 절대적인 신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일단 식약처는 조사 대상인 10종에 대해 검출 빈도, 발암성, 생식독성 등을 고려했을 때 위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물질을 선정했다. 에틸벤젠, 스타이렌, 클로로포름, 트리클로로에틸렌, 메틸렌클로라이드(디클로로메탄), 벤젠, 톨루엔, 자일렌, 헥산, 테트라클로로에틸렌 등이다.

위해평가와 관련해선, 휘발성유기화합물 측정법을 ‘초저온 냉동 분쇄법’으로 결정했다. 생리대를 급속 냉각해 동결·분쇄한 후 고열(120도)로 가열해 방출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을 기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법(GC-MS)으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식약처가 기존에 고시한 실험법과 다르다. 기존 방법은 생리대 성분과 관계없이 방출되는 물질을 측정하는 방출실험법이다. 과거 식약처의 기준과 전혀 다른 결과치가 나올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검출된 위해성분이 생리불순, 생리량 감소, 생리통 등의 부작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어떻게 검증할 지도 관심사다. 생리대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면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방법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을 추적해 인체와 연관성을 찾는 역학조사를 함께 진행해야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식약처는 역학조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식약처는 “위해 평가는 여성이 하루에 생리대 5개를 사용하는 경우에 휘발성유기화합물이 피부로 전이되는 비율, 피부흡수율, 전신 노출량을 고려해 진행한다”고 밝힌 상태다.

◇ 어떤 결과 나오더라도 소비자 피해 불가피

식약처는 이달 말까지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에 대한 전수조사를 끝내 업체명 품목명,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량, 위해평가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 76종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2차 조사를 추가 진행할 방침이다.

소비자들은 결과가 나오는 이달 말까지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식약처가 어떤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소비자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미 이번 파문으로 수많은 여성 소비자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생리대를 사용해야 했다. 일부 소비자는 이름이 공개된 생리대 대신 대체품을 찾아야 하는 불편과 수고를 겪었다. 무엇보다 생리대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인 여성들이 수십 년간 사용해야 하는 생필품으로, ‘모든 생리대가 안전하다’는 발표가 아니고서야 수십년간 생리대를 사용해온 소비자들은 모두 피해자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계에서는 식약처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성 검증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다시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을 맞기엔 더이상 소비자들의 피해를 가늠할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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