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정치가 가능한 것만 꿈꾸면 그 방향은 기득권을 향한다. 불의를 현실로 착각한다. 일찍이 체코의 하벨 대통령이 통찰했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다. 불가능을 꿈꿔야 인류애의 방향에서 나라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킬 수 있다. 가능한 것만 꿈꾸면 ‘음모, 거래, 힘자랑’이 난무한다. 불가능을 꿈꾸면 ‘공동체의 열망’을 최우선시한다.

국민의당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국민의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자유투표에 맡기고, 결과적으로 부결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국민의당은 이번 헌재소장 동의안에 대한 태도를 통해 개혁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줬다. 촛불이 만든 정부와 함께 상식이 통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라는 국민의 지엄한 요구를 배신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저수지인 자유한국당과 한 배를 타는 치명적인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자유투표라는 깃발 아래 숨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군대의 동성애를 불법화한 군형법 합헌 결정 때 위헌 소수의견을 낸 김 후보자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이 믿을 수 없는 가이드라인은 매우 반인권적인 퇴행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마저 차별해온 매우 폭력적인 주먹으로 후보자를 가격했다.

왜 대한민국의 대다수 친미주의자들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 대법원의 판단은 싸그리 외면하는가. 국민의당은 아직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 미세먼지 자욱한 흐릿한 판단력으로 스스로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있다.

심지어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이 20대국회 결정권을 가졌다”고 발언한 것은 최악의 정치 메시지다. 대변인이나 당대표의 발언을 보면 부결을 위한 지도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

‘결정권’ 발언은 과반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산수’로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전혀 ‘수학적’이지 않은 뺄셈 정치의 전형이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법안을 민주당, 정의당과 연대해 통과시키고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은 겉으로는 박성진, 류영진 등을 문제 삼았지만 헌법기관의 수장을 뽑는 일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도 어렵게 됐다.

물론 이번 부결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여당인 민주당의 독주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초반엔 감동적이었지만 후반엔 한마디로 이해불가다. 최악의 인사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유탄을 김이수 후보자가 맞아야 하나. 촛불정부의 무자격자 박성진의 지명철회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이른바 제3당의 당당한 모습 아닌가. 거듭 강조하지만 정당의 태도와 메시지가 누구를 미워하는 것에서 비롯되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를 두고 당 대표가 제3당의 힘을 자랑한 것은 정치의 금도를 넘은 것이다.

‘극중주의’라는 몰가치적 방향은 국민의당을 의회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양당체제에 대한 단순한 반대급부로 제한하는 전략적 오류로 이어진다. 국가를 전진시키고 공동체의 기운을 북돋우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반대급부가 되는 것만으로는 책임정당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지금 국민의당은 퇴행적 반대급부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당은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정권교체의 성격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연대를 하려면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아니라 민주당, 정의당과 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민주당, 정의당과의 연대를 통해 국민이 요구한 개혁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자의반, 타의반 중도보수로 이동하고 있을 때 국민의당이 살 길은 개혁야당의 선명성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정부 여당의 오른쪽에 국민의당의 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을 기웃거리며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바라는가. 그것도 전위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길을 돌파해 온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온몸을 던진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당이 취할 태도인가.

국민의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문재인 정부의 왼쪽에서 개혁과제 추진을 선도하는 것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숙명이기도 하고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의 지지를 확보해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안철수 대표는 이미 자신과의 경쟁 대열에서 이탈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증오심을 버려야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증오의 정치는 기껏해야 스스로를 옥죄는 결과밖에 얻지 못한다.

국민의당은 지금 매우 고립돼 있다. 분노는 고립을 심화한다. 분노는 모든 것을 흐릿하게 봄으로써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정치에서의 주관적 분노는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치명적 오솔길로 스스로를 인도한다. 무엇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어디에 미래가 있는지, 어디에 잠재적 지지가 있는지 큰 그림을 갖고 움직이지 않으면 정당의 존재 이유조차 소멸돼 갈 것이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촛불이 요구한 민주공화국을 위한 개혁과제를 선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제3당을 만든 국민의 진정한 뜻이다. 그것을 촛불이 증명했다. 국민의당은 탄핵의 견인차였다. 제3당의 존재가치는 국회의 압도적 탄핵 가결 때 정점을 이뤘다.

정당의 목표가 민주공화국을 전진시키는 방향과 일치하면 자연스레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민의당이 가진 ‘제3당 결정권’이 낡은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길에 진입하는 티켓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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