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강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국회가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바깥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회의하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최영훈 기자] 국회 주도로 진행 중인 헌법 개정에 대해 정치권 바깥에서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 됐지만, 국회 주도의 개헌 논의가 이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도 지난 8월부터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개헌에 대한 국민 목소리 담기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약속했고, 국회 개헌특위도 이에 발맞춰 내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기로 한만큼 앞으로 남은 기간 국민 목소리를 얼마나 담느냐가 개헌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개헌특위는 권력구조 개편부터 기본권 확대 등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한편, 전국 순회 대국민토론회와 원탁회의, TV토론 등 온오프라인을 통한 대국민 의견 수렴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개헌특위는 기본권 확대와 관련해 주체를 국민 또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인종과 언어를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할지를 비롯해, 생명권, 안전권, 보건권, 소비자 권리,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의 권리, 망명권 신설 여부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의 경우 대통령 권한 분산과 협치에 기반한 정부형태로 개편한다는 원칙 아래 현행 대통령중심제 개선, 혼합정부제·내각책임제 도입 등이 검토 단계에 있다. 지방분권은 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 도입, 보충성의 원칙(지역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무는 원칙적으로 시·군·구가 처리하되 어려운 경우 시·도의 사무로, 이 역시 어려울 때 국가의 사무로 각각 배분한다는 원칙) 도입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외에도 개헌특위는 예산법률주의 도입, 경제민주화 규정 강화, 토지공개념 신설, 헌법 전문 내 복지·분권국가 등 새로운 시대가치와 5·18민주화운동 및 6·10항쟁 등 역사적 사실 추가 여부, 수도 규정 신설 등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개헌특위는 이 같은 논의 내용에 대해 지난달 29일 부산을 시작으로 한달 간 광주, 대구, 전주, 대전, 춘천, 청주, 제주, 의정부, 수원, 인천 등 11개 지역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해 국회는 지난 1일 국회에 국민 자유발언대를 설치하고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전국 11곳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개헌에 대한 국민 의견도 수렴하기로 했다. 사진은 국회 분수대 옆에 마련된 ‘응답하라 1987 개헌 나도 한마디 국민 자유발언대’ 개막식 행사에서 박수연 어린이가 개헌 관련 첫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의견수렴'에 고개 갸웃거리는 국민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발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지난 12~13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결과 개헌 찬성은 75.4%, 반대는 14.5%였다.(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개헌특위에서 논의 중인 개헌 주요 이슈에 대한 합의 도출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때문에 개헌특위가 전국 순회 토론회를 열어도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심도있게 청취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이하 국민개헌넷) 준비위원회는 지난 12일 "국회 개헌특위가 진행하고 있는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는 국민의 참석과 발언을 제한되고 있으며 국회의원과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돼 실질적 국민참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날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진행한다던 국민원탁회의나 대국민여론조사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특위는 개헌 과정의 국민참여를 요식행위로 만들고 있으며 주권자들을 들러리로 만들고 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 같은 목소리는 개헌특위의 전국 순회 국민대토론회에서도 제기됐다.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개헌 토론회에서 최상한 경상대 교수는 “국민이 없는 개헌 논의”라며 “국회라는 시장에서 앙꼬 없는 헌법 찐빵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주권자 없는 헌법 개정 논의, 주권자도 모르는 정부 형태 논의가 되고 있는데 반드시 국민참여와 국민주도가 보장될 수 있도록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강원 춘천에서 열린 강원권 개헌 토론회에서도 국민 의견 수렴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13일 강원 춘천 한림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유성철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국회가 진행하는 원탁토론이나 자유발언대 등의 의견수렴 방식이 추상적이고 반영계획도 구체적이지 않다”며 “결론은 국회가 일방적으로 한다면 토론의 의미도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과연 국민을 위한 토론회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역을 한번씩 돌고 나서 ‘의견을 들었으니 이제 여야가 정리하겠다’고 하면 안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개헌 논의에서 국민 여론 수렴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개헌특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정종섭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국민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왜 이 시대에 개헌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회 주도로 마련하는 개헌안이 국민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다면 개헌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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