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국정원의 만행이 충격을 주고 있다. 여론조작은 물론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박원순 제압 문건’이 실제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이 바빠졌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댓글부대 여론조작 사건으로 시작된 국정원의 적폐청산 작업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박원순 제압 문건’이 실제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산됐다. 아직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넘어설 ‘윗선’ 수사 단계는 아니지만, 종착점이 MB가 될 수 있다는데 무게추가 실리고 있다. 최종 결정권자의 결재 없이 국정원장 임의로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 문성근 소환으로 블랙리스트 수사 본격화

당장 검찰은 수사팀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MB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퇴출 대상으로 지목돼 피해를 입은 인사만 현재 82명으로 확인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국정원은 적폐청산 TF 조사 결과, 2009년 7월 당시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의 주도로 ‘좌파 연예인 대응 TF’가 구성돼 정권 비판적 성향의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압박했다고 밝혔다. 특히 국정원에서 ‘VIP 일일보고’와 ‘BH 요청자료’ 형태로 진행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점에서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첫 신호탄은 오는 18일로 예상된다. 이날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첫 번째로 배우 문성근 씨가 검찰에 출석하기로 했다. 그의 전면 등장만으로도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씨는 동료 배우인 김여진 씨와 함께 부적절한 관계를 연상시키는 나체 합성 사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국정원에서 두 배우의 이미지 실추를 위해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증거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저급한 수준에 분노를 넘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검찰은 문씨를 시작으로 블랙리스트 수사를 본격화하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문건의 진위파악에도 나섰다. 문제의 문건은 ‘서울시장의 左(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안’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다. 이를 근거로 국정원 TF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2011년 11월 박원순 시장을 종북 인물로 규정한 뒤 보수단체 규탄집회, 비판성명 광고, 인터넷 글 게시 등의 활동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기 전(2009년 9월, 2010년 9월)에도 비판 활동을 수행·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박원순 시장도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다. 그는 지난 12일 이탈리아 순방 귀국길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국가 근간과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다.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수사하고, 엄중하게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분명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건의 정황이) 밝혀지면 민·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향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물론 MB정부 시절 국정원 실세들이 줄줄이 검찰로 향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MB의 BBK 관련 발언을 담은 영상이 국회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새로운 수사 단서가 추가로 확인되면 재수사 필요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 “새로운 단서 확인되면 BBK 재수사 검토”

이와 별도로 검찰은 BBK 주가조작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수사팀은 “이미 끝난 수사”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부실 또는 은폐수사라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재수사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새로운 혐의가 나온다면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 역시 “새로운 수사 단서가 추가로 확인되면 재수사 필요성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미 활시위를 당겨졌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BK 가짜편지와 관련한 새로운 단서로 문자 한통을 공개했다. 해당 문자메시지에는 “저에게는 두개의 카드가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 쓸 때가 아니다. 가짜편지 검찰청 발표는 담당검사 박철우 검사의 말 빼고는 전부 거짓”이라고 적혀있다. 그는 수사를 요청하며 발신인에 대한 정보 제공을 약속했다. 같은 당 김경협 의원은 MB와 김경준 씨 사이에 주식 매입 대금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검찰 수사기록에서 확인했다고 전했다. MB와 BBK가 관련 없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의문을 주는 대목이다. 체면을 구긴 검찰의 다음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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