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건군 69돌을 맞는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건군사상 처음으로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9월 28일 열린다. 기념행사를 28일로 3일 앞당긴 것은 추석을 전후로 10일간의 황금연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현행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자는 이색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문희상·민병두·박광온·이해찬 의원,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 등 32명이 결의안에 서명했다.

이들은 “국군의 뿌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주권을 지킨 임시정부 군대인 광복군임이 분명하므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것은 헌법정신과 항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국군의 역사적인 맥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권칠승 의원은 특히 “현행 국군의 날은 1956년에 제정된 것으로, 6.25 전쟁 당시 국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하는 의미라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국군의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야권에서는 “독립 세력과 건국 세력의 편 가르기”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건국일 논란에 이어 이제 국군의 날 변경까지 나오며 대한민국 역사를 독립의 역사와 단절시키고, 독립세력과 건국세력을 편 가르기 하려는 시도에 골몰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한시바삐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도 “광복군 창설일을 따로 기념하면 될 것인데 굳이 국군의 날을 바꾸자고 한다면 이는 불필요한 논란을 부르고 확대할 게 뻔하고 결국에는 또 국민을 분열시키는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며 우려의 뜻을 표했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정해진 것은 1956년이다. 1956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국군의 날 기념일 제정안을 의결하고, 9월 21일 대통령령 제1173호로 공식 선포됨에 따라 시행하게 됐다. 1956년 10월 1일이 제1회 국군의 날이 된 경위다.

그러나 육·해·공군이 처음부터 같은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하지는 않았다. 우리 군은 미 군정기 때 ‘조선경비대’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군으로 편입됐다. 하지만 육군과 해군뿐이었다. 공군은 1949년 10월 1일에야 육군에서 분리, 하나의 독자적인 군으로 독립했다. 국군은 그때서야 비로소 육·해·공 3군이 정립되는 모습을 띠게 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각 군은 개별적인 창설일을 따로 기념하고 있었고, 전군을 아우르는 통합된 기념일은 없었다. 예컨대 육군은 1연대가 창설된 1946년 1월 15일, 해군은 모체인 ‘해방병단’이 창설된 1945년 11월 11일, 공군은 육군에서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을 각각 기념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다가 6.25가 끝난 뒤 각 군의 기념일에 대한 역사적 의의와 국군의 사기, 국민의 국방의식 제고와 방위태세 공고화 등의 취지로 각 군 기념일을 대통령령으로 공포(1956년 8월 30일)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육군은 종전의 1월 15일을 바꾸어, 전쟁 중 육군 3사단(백골부대)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10월 2일을 ‘육군의 날’로 정했다. 이날은 유엔군이 작전명령 제2호로 국군의 38선 돌파를 공식 승인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각 군이 따로따로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을 두고, 시간과 물자의 낭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국군으로서의 일체감 조성이 미흡하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에 1년 뒤 각 군의 기념일을 통합하자는 데 3군이 합의했다. 지금의 10월 1일 국군의 날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무회의 심의 경과표에는 “국군의 날을 단일화 해 국가재정과 시간을 절약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다”라고만 돼있어 구체적으로 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신인호, 국방일보 2017.9.11., Weekly 군사사 & 스토리-11)

더불어민주당이 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바꾸자고 한 것은 국군의 정통성 측면에서 볼 때 정당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본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시점으로 본다면 당시 일본과 싸워 나라를 지킨 광복군이야말로 국군의 뿌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무모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안보상황이 벼랑 끝에 와 있는 이때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우선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보훈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 국군의 날 변경문제를 언급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문제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지 국군의 날을 옮겨달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국군의 날을 기념일로 삼은 지 내년이면 70주년이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역사적인 당위성으로 치자면 광복군 창설일 만 못하겠지만 그래도 70년을 지켜온 기념일인데 하루아침에 바꾼다면 신중치 못한 결정이다. 야당 대변인의 말처럼 광복군 창설일도 국군의 날과 함께 정부가 공식 기념일로 정해 그 뜻을 기린다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고, 그런 시간이 상당기간 흐르다 보면 대중의 여론이 큰 무리 없이 자연스레 모아지지 않겠는가. 제각각이던 육·해·공 3군의 날을 특정일로 통합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던 것처럼 말이다.

개인이 아닌 온 국민이 공유하는 기념일은 충분한 시간과 필요한 절차를 밟아 차근차근 추진돼야 한다.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바꿔버리면 반드시 뒤탈이 나게 마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로 촉발된 건국절 논란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진영논리로 대립할 게 아니라 보수든 진보든 양측을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앙일보가 내놓은 제안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이 신문은 1919년이든 1948년이든 특정 시점을 건국절로 못 박으려는 시도를 중단하자고 제안한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과 1919년 1948년을 모두 소중한 건국과정으로 보고 재조명하자는 것이다.(중앙일보 사설, 2017.9.18.)

그렇다면 국군의 날 변경 문제도 이 날이냐 저 날이냐 새로운 쟁점으로 키워나갈 것이 아니라 광복군 창설일도 정부 기념일로 지정한 다음 여기에 적합한 행사를 기획, 추진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국민적 여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다. 그 때 가서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 국회는 국군의 날 바꾸는 것 말고도 통과시켜야 할 화급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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