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거짓 정보를 흘린 쪽은 어디일까. 국정원과 검찰이 물밑 신경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허위 보도된 데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는 것. 해당 보도가 있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논두렁 시계 사건의 보도 경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 이인규 ‘미국행’ 홍만표 ‘감옥행’ 우병우 ‘재판중’
사건의 중심엔 이인규 전 중앙수사부장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의 수사 책임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주목할 부분은 그의 억울함이다. 2015년 2월, 기자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 보도는 “국정원 주도로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사건 당시 국정원에 몸담았던 직원들은 반발했다. 도리어 “이인규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암초를 만났다. 양측의 대립으로 바쁜 행보가 예상됐으나, 사건의 핵심 조사 대상인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법무법인 바른에서 퇴사하고, 자녀가 유학 중인 미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해왔다. 이를 두고 도피성 출국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부인했다. 경영진 요구에 따라 법무법인을 그만 뒀을 뿐이라는 것. 국정원 적폐청산TF는 그의 길을 막지 못했다. 조사는 감찰 차원이라 강제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병이 확보된 인물은 홍만표 전 중수부 수사기획관이다. 사건 당시 언론 브리핑을 담당했던 그는 검찰 내부 수사 정보 유출자를 ‘형편없는 빨대’라고 부르며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화를 냈다. 이는 논두렁 시계 보도가 사실인 것처럼 해석됐다. 야권에선 “고의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면서 망신주기를 하고 있다”며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을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를 검사장으로 끌어올렸다.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을 보낸 뒤 현재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이 있는 곳은 서울남부구치소다.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은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혐의는 두 가지다. 그는 상습도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선처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받았고, 변호사 수임료보다 금액을 축소해 허위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는 수법으로 약 34억원의 소득신고를 누락, 15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대한변호사협회는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을 제명시켰다. 이로 인해 향후 5년 동안 변호사 활동이 금지됐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가 더해지면 재판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문한 검사가 바로 그다. 당시 중수1과장이었던 우병우 전 수석은 10시간 이상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변호인 자격으로 조사실에 입회한 문재인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에는 오만함과 거만함이 묻어있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실제 우병우 전 수석은 VIP 전갈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한때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MB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데 부담을 느끼고, 검찰 수뇌부에 구속을 만류했다. 하지만 “우병우가 버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병우 전 수석의 한 지인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진짜 증거가 있냐고 물었더니 물적 증거는 없다고 답했다”며 가슴속 얘기를 털어놨다. 우병우 전 수석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