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1 21:19 (수)
[이영종 ‘평양 주석궁에선’] 대북제재 속 설 땅 잃어가는 북한 외교엘리트
[이영종 ‘평양 주석궁에선’] 대북제재 속 설 땅 잃어가는 북한 외교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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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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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외교관은 한 나라의 국격과 수준을 대표한다. 최고통치자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수립이나 외교활동을 위해 임명한 특별한 신분이란 측면에서다. 국가수반의 임명을 받고 주재국의 아그레망 절차를 밟아 부임하는 특명전권대사의 경우에는 ‘외교관의 꽃’이라 불릴 정도다. 국제사회가 외교관에게 다양한 형태의 특권과 편의를 제공하는 걸 공통의 규범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특수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이런 궤도에서 이탈해 국제사회의 눈총을 산지 오래다.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면서 수난이라 할 만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국제 외교무대에서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것을 물론이고 추방이나 공관축소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최근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감행하고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2375호를 내놓으면서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멕시코와 쿠웨이트 등 남미와 중동에 이어 스페인의 경우도 유럽에선 최초로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외교관들이 방어전선의 최일선에 서게 됐다. 거친 비난 성명이나 대응조치를 내놓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관으로서는 금기시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 돼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연설 석상에서는 유엔주재 북한 대사 자성남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도발적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트럼프의 “북한 완전파괴”등 강경발언에 대해 “개 짖는 소리”라는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며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 같은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점차 수위가 거칠어지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외교 당국이나 관리의 말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막말을 퍼부어대는 모습에 국제 외교가에서는 김정은식 막장외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김정은 스스로 ‘워싱턴 타격’이나 ‘서울을 타고 앉겠다’는 등의 호전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이런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의 외교고립은 사상 최악이라 할만하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6년차에 접어들었지만 해외 지도자와 제대로 된 정상회담 한번 하지 못했다. 해외에 한 차례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옛 소련과 중국은 물론 동구권,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인 김일성과 비교하면 낙제점인 상황이다. 중국·러시아를 주로 상대하는 데 머무른 김정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국가마저 김정은의 도발 드라이브에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도 문제다. 북한은 최근 들어 “대국답지 못하게 미국의 제재소동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며 중국을 비난하고 나서는 등 전통적인 친선관계마저 위기에 빠트리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남(김정은 이복형) 암살 사건도 북한 외교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는 공관 소속 외교관까지 범행에 가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김정남이란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망한 건 김정남이 아닌 북한 공민 ‘김철’(김정남의 여권상 이름)”이라며 버텨야 했다. 불똥이 김정은에게 튀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해외주재 북한 대사들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주재 북한 대사로 부임한 박남영은 2명의 대사 후보가 거부당한 뒤 9개월 만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불법 행위로 지난해 초 외교관 2명이 추방된 데다, 정보기관 간부를 대사로 파견하려 한 걸 독일 당국이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춘일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해 11월 유엔 대북결의에 따라 여행금지 대상으로 묶이면서 도중하차했고 마동희 대사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이 사실상 끝난 것이란 평가다.

여기에다 외교관 신분을 악용한 밀수와 각종 불법행위까지 드러나면서 북한 외교의 위상은 바닥으로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삼성전자 TV·에어컨과 담배 수 만 갑을 몰래 반입하다 세관에 적발됐다. 앞서 같은 해 6월에는 파키스탄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주류 밀매를 하며 몇 배의 차익을 올리다 적발된 사례가 10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북한이 외교 공관 건물과 부지를 불법 임대해 수익을 챙긴 건 독일과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 등 확인된 곳만 4개 국가다.

북한 외교관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건 평양으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끊긴데다 ‘충성자금’(달러 상납) 압박까지 겹친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탈북 망명한 태영호 런던주재 북한 공사는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사는 한 달에 1,100달러, 참사·공사는 700∼9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털어봤다. 현재 물가수준이나 외교관이란 위상으로 볼 때 가족 등과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돈이다. 북한의 불법적인 외교활동에 대해 미국은 대북제재 차원의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어 어려움을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외교적 위상추락은 핵 개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90년대 초반 북핵 의혹이 제기되면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등을 위협했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긴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집권 6년차인 김정은의 도발 드리이브는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북한 김정은 정권은 기로에 섰다.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느냐 아니면 인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탕아로 남느냐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는 건넜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북한에게는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상황에서는 체제생존조차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김정은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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