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인원을 추가근무에 이용하는 대신 일자리를 나눠 '건전한 고용'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늦은 밤 귀가하는 회사원.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일자리 창출’이 화두인 현재 기업계와 예비취업인구의 관심사를 모으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는 질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용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일자리를 잘 분배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21일 40여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개최한 ‘일자리나누기 지원방안 설명회’에서 탄력정원제를 적극 홍보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도입을 결정한 후 본격적으로 해당 제도를 공공기관의 고용정책에 반영시키려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고용률 낮아지는 경기침체기, 일자리 나눠 소득수준 높인다

탄력정원제도는 총 인건비를 고정한 채 피고용인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정책이다. 절약된 각종 수당은 새 인력을 고용하는데 사용된다.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다수의 인원이 경쟁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고용혜택을 누리자는 취지며, 회사 측에서도 추가 인건비 부담이 없다는 점 때문에 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

일자리나누기의 역사는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장기 경기침체를 겪던 1891년 독일에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금전으로 배상한 것이 시초다. 1930년대를 지배했던 대공황 시기에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같은 움직임이 관찰됐다. 당시 고용·소득주도의 경제부흥정책을 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대통령성명을 통해 근로자의 주당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제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시행되는 일자리나누기 정책이 근로자·기업·정부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하강 국면에서 일자리 수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고 및 재고용에 뒤따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단 일시적 경기부양책뿐 아니라 근로시간을 영구히 단축함으로서 국가 전반의 고용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 국제사회에서는 파격 아닌 ‘사회적 합의’

일자리나누기의 효용성은 실제로 해당 정책을 활용중인 국가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일자리나누기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으며 일본·터키·미국·우루과이 등도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이다.

금융위기가 위세를 떨치던 2009년 세계 각국에서 근로시간 축소를 통해 고용률을 유지하려 시도했던 것이 그 예다. 독일에서는 6만개 기업·기관과 140만명의 근로자들이 단기근로 정책에 동참했으며, 그 결과 40만개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인 터키는 10만개, 몇 개 주만이 일자리나누기 정책을 실행했던 미국에서도 16만5,000개의 일자리가 보존됐다. 국제노동기구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고용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금융위기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다”고 평했다.

캐나다 정부는 지역 사무소의 일종인 ‘서비스 캐나다’를 통해 일자리나누기 프로그램의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해 근로자들이 비자발적 실업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설명이 함께한다. 기존 38주였던 일자리나누기 프로그램의 진행가능기간은 2016년부터 76주로 늘어났다.

일자리나누기는 한국의 높은 근로시간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될 수 있다. <그래프=시사위크>

◇ ‘일 중독’ 한국, 소득과 ‘삶의 질’의 균형점은 어디

근무시간이 많고 휴일이 적은 한국의 근무조건은 일자리나누기 정책을 도입하기 좋은 환경이다. OECD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82시간이었다. OECD 평균인 1,766시간보다 하루 1시간 이상 많으며 일자리나누기 분야의 선도자인 독일과는 2시간50분의 차이가 났다(월 근무일 21일 기준). 최근 기업계에서도 유연근무제가 확산되는 등 자정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만 일자리나누기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동서발전이 지난 2014년 2월 공기업 중 처음으로 ‘일자리 나눔형 교대근무제’를 도입했다. 10명이 한 조로 운영되던 기존 교대근무형태에 5인조 근무를 포함시켜 보다 여유로운 근무조건을 갖췄다. 초과근무자에게 투입되던 대체근무수당은 신규인력 채용의 재원으로 활용됐다. 올해 연말에는 탄력정원제로 절감된 초과근무수당을 이용해 총 72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다만 우려도 존재한다. 근무시간의 감소로 근로자의 소득이 감소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존 목적이 퇴색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역설은 일자리나누기 정책을 입안한 정치행정가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였다. 국제노동기구는 일자리나누기 프로그램이 효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로 근로자들의 임금보장을 제시한 바 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도 고용확대를 위해 노동시간을 제한하면서 근로자가 받아야할 최소임금수준을 함께 규정했다.

현재 한국에 연착륙중인 일자리나누기 정책은 초과근무수당이나 연차수당 등 정규임금 외의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적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취업자와 기업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차후 임금수준과 여가시간의 비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탄력정원제보다 적극적인 방식의 일자리나누기가 뿌리내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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