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가 자사 사이트에 유통되는 유해 영상에 대한 자율 규제를 거부했다. <텀블러 홈페이지>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글로벌 IT기업 ‘텀블러’가 자사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는 유해 영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요청한 기업의 ‘자율 규제’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음란물의 온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텀블러의 태도는 안일하다는 지적이다.

◇ 유해 영상 무더기 적발, 텀블러 “표현의 자유”

텀블러는 2007년 블로그와 SNS를 결합한 형태로 세상에 공개됐다. 다양한 플랫폼의 이용을 원하는 사용자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한 취지로 출발했다.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인 콤스코어에 따르면 텀블러 사용자는 전 세계 1억1,700만명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해당 사이트는 음란물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해 10대의 유해 영상 접근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출범한 텀블러는 최근 설립 취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실제 기자가 ‘텀블러’ 애플리케이션에서 ‘고등학생’ ‘중학생’ 등과 같은 일반적인 단어를 검색해본 결과, 자극적이고 유해한 영상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혀 필터링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10대 사용자가 게시한 유해 영상까지도 발견됐다.

방통심의위가 지난해 성매매·음란 정보로 판정, 시정·삭제 요구를 내린 총 사례 8만1,898건 중 4만7,480건이 텀블러에서 나왔다. 국내에서 확인된 온라인 음란 정보의 절반 이상이 텀블러에서 유통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텀블러 측은 이같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불법 행위가 어떠한 제재도 없이 자행되고 있지만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안일한 태도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8월 텀블러 측에 불법 콘텐츠 대응을 위해 ‘자율심의협력 시스템’에 참여해달라고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글로벌 사업자들은 국내 운영을 위해 ‘자율심의협력시스템’을 도입한 상태다. 이를 통해 해외 사업자는 유해 정보 유통을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텀블러에 게시되는 유해 영상 문제가 심각하다. <텀블러 홈페이지>

◇ 방통심의위 “기업이 거절하면 강제로 조치할 수 없어 문제”

텀블러는 그러나 “미국 법에 의해 규제되는 미국 회사”라며 “한국 사업장이 없고 한국의 사법관할권이나 법률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한국어 지원 등으로 국내 이용자 유치에는 적극적이지만 논란이 커지자 ‘미국 회사’라는 변명을 내세워 자정노력을 거부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서비스라는 게 텀블러 측 주장이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의 몫으로 돌렸다. 이 역시 ‘꼼수’라는 지적이다. 텀블러는 가입 약관에서 ‘콘텐츠와 관련해 어떠한 종류의 진술이나 보증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음란 영상으로 트래픽을 증가시키고 매출을 높이면서 그에 대한 기업의 책임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를 제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방송심의위가 요청한 ‘자율심의협력시스템’은 기업이 주체적으로 시스템을 도입해 데이터를 관리해달라는 취지다. 쉽게 말해 ‘제재’가 아닌, ‘권고’ 수준인 것이다. 이 외엔 특별한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스스로 자정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해당 방통심의위는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IT기업에 대한 심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른다”며 “기업이 거부를 하면 강제적인 조치를 할 수 없다. 가급적이면 시스템 안으로 포섭해 자율적으로 심의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접속 차단이라는 조치가 있지만 우회 접속 등 해외 사업자가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어 사업자가 자율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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