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에서 올 시즌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다린 러프.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삼성 라이온즈에게 2017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위가 확정됐고, 레전드 이승엽과 작별을 고하게 됐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 이 중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던 삼성. 하지만 이제는 다음 시즌마저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수준으로 추락했다.

삼성은 최고의 자리에서 추락하는 동안 최고 수준의 선수를 여럿 잃었다. 그리고 이제 이승엽마저 떠난다. 새로운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밑그림이다.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밑그림이 잘못되면 그리다 지우고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암흑기는 길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홈런이다. 아직 1경기가 남아있지만, 삼성은 올해 불명예스런 기록을 사실상 하나 더 확정했다. 팀피홈런 1위다. 현재까지 18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2위 kt 위즈(170개)와 14개 차이다.

올해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삼성은 이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무려 193개의 홈런을 허용해 역대 기록인 2000년 SK 와이번스(팀피홈런 195개)의 뒤를 이었다. 2위 롯데 자이언츠(161개)와의 차이도 32개에 달했다. 2015년 역시 마찬가지다. 182개로 1위에 올랐다. 3년 연속 가장 많은 홈런을 내주고 있는 팀이 삼성이다.

이러한 기록은 구장환경에서 기인한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삼성 라이온즈파크를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라이온즈파크는 비교적 타자친화적이라는 평을 받던 대구시민야구장보다 더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SK 홈구장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과 함께 가장 많음 홈런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라이온즈파크에서는 181개의 홈런이 나왔는데, 이는 SK행복드림구장과 함께 1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현재까지 SK행복드림구장에서 217개의 홈런이 나왔고, 라이온즈파크에서는 190의 홈런이 나왔다.

문제는 홈구장의 특징을 홈팀이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시즌 라이온즈파크에서 나온 190개의 홈런 중 삼성이 때려낸 것은 75개에 불과했다. 반면 허용한 홈런은 115개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삼성은 홈에서 73개의 홈런을 치고 108개의 홈런을 내줬다. 삼성이 팀피홈런 1위를 기록한 이유다.

삼성의 이러한 모습은 SK와 상반된다. SK는 올해 홈구장에서 129개의 홈런을 치고, 88개를 허용했다. 지난해에도 홈에서 친 홈런(97개)이 허용한 홈런(94개)보다 많았다. 홈에서 허용한 홈런이 많은 편이지만, 그만큼 많은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SK는 올해 압도적인 홈런의 팀이 됐다. 현재 타율을 꼴찌지만, 역대 팀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가장 적은 안타를 치고 있어도 홈런은 가장 많다. 홈구장의 특징을 고려해 팀전력을 구성했고, 확실한 효과를 보고 있다.

과거 넥센 히어로즈도 좋은 사례다. 목동야구장을 쓰던 넥센은 작은 홈구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팀컬러를 홈런으로 정했다. 박병호를 비롯해 힘 있는 타자들을 주로 영입했고, 기존 선수들도 웨이트트레이닝 등을 통해 홈런을 잘 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 결과 창단 이후 약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넥센은 꾸준히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삼성은 올 시즌 외국인 용병 다린 러프가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구자욱도 21개의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이승엽이 22개로 여전히 팀 내 2위를 차지했고, 이원석(18개)과 조동찬(10개)까지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밑그림은 두 가지다. 환경을 바꾸거나, 환경에 맞춰야 한다. 다만, 모두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 홈구장을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펜스 거리를 늘리거나 높이를 높이는 방법 정도가 있다.

환경에 맞추는 방법은 넥센과 SK가 그랬듯, 팀 공격의 방점을 홈런에 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삼성은 러프를 제외하면 홈런타자로 내세울만한 선수가 없다. 기대를 받는 유망주는 적지 않지만, 아직까지 1군에서 두각을 나타낸 거포 유망주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외부 영입이 쉬운 일도 아니다.

어차피 삼성에겐 당분간 시간이 필요하다. 거포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동시에, 경기장 조정을 통해 홈런이 덜 나오도록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경기장 조정으로 홈런 수가 평범한 구장이 된다면, 그에 맞춰 또 다른 팀 전력을 구성할 수 있다. 별다른 효과가 없다 해도 팀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 더욱 또렷해지는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