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 <중앙자살예방센터 제공>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국은 지난 2011년 제정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통해 자살예방대책의 방향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지난 2012년 설립된 중앙자살예방센터 또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 자살예방정책을 기획‧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자살예방 캠페인 ‘괜찮니?’와 교육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 등을 진행하며 자살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사위크>는 지난 2016년부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역임해온 홍창형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곳곳에서는 정부·언론·민간 등 사회 각계가 자살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짙게 묻어났다. 한국의 자살예방대책의 현주소를 묻는 질문에서는 부족한 정부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음은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평가한다면.
“한국의 자살률은 1989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8.6명에 불과했는데, 2009년에는 33.8명으로 증가하여 20년 사이에 자살률이 4배나 증가했다. 2009년 정점을 찍고 난 2년 후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정부가 본격적으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법안이 생기고 정부와 민간이 노력을 기울이면서 2009년 33.8명이었던 자살률이 2016년에는 25.6명으로 감소하여 자살률이 24%나 감소했다.

현재 법안은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OECD 자살률 평균 또는 그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보완될 여지가 많다.”

- 자살예방 예산이 올해 99억원, 내년 105억원인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국가차원의 자살예방대책과 지원이 있으면 자살률이 감소한다는 사실은 이미 선진국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2011년 자살예방법이 생긴 이후 본격적 지원이 있고난 이후 5년 연속 자살률이 20% 가까이 감소한 사례가 있지만, 문제는 속도다. 워낙 자살률이 높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살률이 떨어지면 10년이 지나도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다.

한국 인구수는 현재 5,170만명인데, 단순하게 5,000만 인구라고 본다면 100억이라는 돈은 1년에 국민 1명당 200원의 예산이 책정되어있다는 뜻이다. 국가 정책방향이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자는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OECD 자살률 평균이하로 감소시키자는 의지가 있다면 현재처럼 몇 년째 동결 혹은 소폭 상승된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목표를 빨리 달성할 것인지 천천히 달성할 것인지는 결국 최고결정권자의 의지에 관한 문제다.”

-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도 정신과치료를 개인적 결함으로 치부하고 터부시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신질환이 생겨 증상이 나타났을 때 치료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이 영국은 30주, 미국은 52주인데 한국은 84주나 된다. 전문기관을 이용하는 비율도 미국은 39%, 호주는 35%지만 한국은 15%에 불과하다. 13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지만 한국의 항우울제 소비량은 OECD 평균의 1/3 수준이다. 모두 정신질환 및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선입견 및 편견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국민 홍보가 아닌 ‘대국민 계몽운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벼운 정신질환을 물론 정신장애인도 당연하게 일반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널리 퍼져야 차별이 사라지고 편견도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대국민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 및 공익광고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는데 현재 예산으로는 매우 어려움이 많다.”

- 청소년‧중장년‧노년인구 등 연령대나 자살시도 원인에 따라 예방대책도 달라져야 할 듯한데.
“전국 42개 응급의료센터에 내원한 자살시도자들을 대상으로 나이, 자살시도 원인 등에 맞는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사례관리를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배 이상 자살률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 현재 한국은 고령층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1인가구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노인 자살문제가 있다. 한국 전체 자살률은 OECD 전체 자살률 평균의 2.2배이지만, 노인자살률은 OECD 노인자살률 평균의 3.2배에 달하며,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자살생각의 경험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노인자살률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소아청소년 위주의 자살예방사업에서 청‧장년자살,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자살의 실태는 알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살예방센터 및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 보건복지부가 자살전담부서 설립을 예고했는데.
“그동안 자살을 전담하는 중앙공무원이 2명밖에 없었다. 자살예방과가 생긴다고 하니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 전담 인력과 예산이 더욱 많이 생기길 기대한다. 자살예방 분야도 다른 특수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와 숙련된 직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매일같이 고민하고 상담해야 하는 직원들이 결국 불안정한 복리후생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소진으로 이직을 많이 하고 있다. 숙련된 직원이 퇴사할 경우 당연히 효과적인 자살예방사업이 수행될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개정된 자살예방법 조항에 인재를 확보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오죽하면 법조항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겠나?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는 여러 분야의 역량 있는 전문가가 힘을 합쳐야 한다. 새로 생기는 자살예방과에서는 역량 있는 인재와 전문가를 육성하고, 직원들의 역량강화 및 복리후생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길 부탁한다.”

“언론이 함께해준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어”

언론 또한 자살예방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입장이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은 언론에게 자살보도를 최대한 자제하고 자살방법·장소 등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낮은 준수율은 권고기준의 존재를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에게 자살예방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물었다.

- 2015년 기준 언론준수율 9.0%라는 수치는 언론이 자살보도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하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권고기준의 수위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법 하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준수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스트리아와 핀란드 등에서는 이미 미디어의 무분별한 자살보도를 스스로 자정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서 실제 자살을 낮춘 경험이 있다. 자살수단을 알리거나, 유서의 내용을 공개한다거나, 장소를 알리는 것은 모방자살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자살명소’를 만들 수도 있다. 자살 관련 보도를 하더라도 이런 정보들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됐으면 좋겠다.

센터에서는 자살예방과 관련한 우수보도에 대해 기자협회와 함께 분기별로 자살예방 우수보도상을 시상하고 있다. 모방자살 등을 부추길 수 있는 보도는 줄이고, 자살예방을 위해 고민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장려하는 노력을 함께하고 있다.”

- ‘자살소식을 알리는 것’과 ‘자살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단순 자살사건 보도가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자살사건 보도가 ‘아, 힘들면 나도 죽으면 되겠구나’ 라는 식의 방아쇠로 작용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자살소식을 알리는 보도보다는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살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고민이 묻어나는 보도를 언론이 함께 해준다면 보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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