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열흘간의 황금연휴를 즐겁고 뜻 깊게 보낼 계획은 잘 세우셨는지요? 휴가를 마치고 우리 모두 잠시 틈을 내어 얼마나 요긴하게 연휴를 잘 활용했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이번 글에서는 휴일이든 평일이든 관계없이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며 향상(向上)의 나날을 이어가게 해주는 ‘휴식(休息)’의 참뜻과 그 실천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휴식(休息)’의 참뜻

사전적인 의미는 ‘잠깐 쉼’이나, 한자를 해체해 그 참뜻을 세밀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글자인 ‘휴(休)’는 사람을 뜻하는 ‘인(亻=人)’과 나무를 뜻하는 ‘목(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은 무리를 지어 숲[林]을 이루고 있니 자연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자인 ‘식息’은 자기 자신을 뜻하는 ‘자(自)’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휴식’의 참뜻이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요.

참고로 우리가 즐겨 마시는 ‘차(茶)’도 해체해 보면 맨 위에 풀을 뜻하는 ‘초(草)’와 맨 아래 ‘목(木)’이 결합해 ‘草木’ 즉 자연을 뜻하고 가운데에 ‘인(人)’이 있으니 그 참뜻 역시 ‘우리 모두 멀리 가지 않더라도 바쁜 일상의 삶 속에서 틈틈이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가지고 초목이 있는 근처 공원이나 정원 속을 홀로 거닐며 잠깐이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새기면 좋겠습니다.

◇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자연

이제 ‘자연’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면 왜 좋은지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양에서는 진리(眞理)를 ‘법(法)’이라는 한자로도 표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자 역시 해체해 보면 물을 뜻하는 ‘수(水)’와 흘러간다는 뜻의 ‘거(去)’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차용해 ‘법’의 본뜻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는 물리학에서 ‘중력퍼텐셜에너지’ 개념으로 법칙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 인간은 자연과 벗하며 조금만 세밀히 살핀다면 그 속에서 진리를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기를 하나 들면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떨어진 꽃을 목격했을 경우 누군가는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병에 걸리지 않아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네.’[不雨花猶落 無病人必死]라는 옛 시인의 구절처럼 유한한 인생을 직시하고 더 이상 갈팡질팡 허송세월하지 않고 ‘생사(生死)’에서 자유로운, 가치 있는 소중한 삶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제 지인 가운데 영국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하신 떼제 공동체의 안선재 수사님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진리의 보고(寶庫)인 자연을 선물했는데 잘 알아채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성경(聖經)을 다시 선물했다’고 하십니다. 바꾸어 성찰해 보면 불경(佛經)이나 조사어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우리 중생들이 어리석어 자연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진리를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석가세존과 조사님들이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 일과 휴식은 둘이 아니네

필자는 올해 연초에 미국에 계신 한 지인 스님으로부터 연하장을 받고 ‘일과 휴식은 결코 둘이 아니네’[作息不二]가 담긴 짧은 성찰의 글을 답신으로 보내드렸었는데 이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 뜨면 곧 온몸을 던져 일하고 해 지면 곧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며) 쉬네.
(이렇게 날마다) 자연에 순응하며 따르다보니 넘치는 복과 지혜 저절로 오는구나.
[日出則作 日沒則息 隨順自然 福慧自得]

참고로 앞 두 구절은 조선 중기를 살았던 어느 스님이, 널리 알려진 격양가擊壤歌 가운데에서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이而’ 대신에 곧 ‘즉則’으로 바꾸어 적극적인 선기(禪氣)를 드러내려 했던 것 같아 저도 이를 차용해 보았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 모두 철저히 이런 삶의 태도를 길러간다면 장차 반드시 보다 나은 세상이 열릴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사실 이 구절은 지난 사십 여 년 동안의 지속적인 자기성찰을 통해 저의 온몸에 박혀버린 선어(禪語)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지을 ‘작作’을 주중 근무 시간을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해 시간을 때운다’라는 마음 자세가 아니라 ‘맡은 바 전문직에 온몸을 던져 뛰어든다’라는 뜻으로 새기면 좋겠지요.

한편 자기성찰에 관한 서양의 대표적인 지침서의 하나인 <탈무드>에서도 역시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인간의 가치는 그가 어떻게 쉬느냐에 달려 있다’고 제창하고 있습니다.

◇ 충분한 수면의 필요성

최근 열악한 근로 환경 조건 아래서 직업 운전자 분들의 경우 수면 부족으로 인한 주의력 결핍에 의한 대형 참사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과로 운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 수면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8시간 이상 수면하며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일, 스마트폰, 게임, 술, 카페인 등의 중독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근로 환경 조건 개선을 포함해 중독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함께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는 것이 시급하겠지요.

◇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 부리기

한편 수면에 관한 효과적인 해결 방안의 하나로 필자의 경우를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그 핵심은 ‘좌일주칠(坐一走七)’, 즉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리기’입니다. 이 사자성어의 뜻을 유추해보면, 우리가 잠자는 시간을 8시간으로 충분히 잡으면, 깨어 있는 시간은 16시간입니다. 여기서 이 깨어 있는 시간의 1/8은 2시간이므로 (설사 중독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잘 치유해주기에 충분한) 2시간을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할당합니다. 그리고 7/8인 나머지 14시간 가운데 출퇴근 시간과 식사시간을 넉넉하게 6시간 정도로 잡아도 법정 근무시간인 8시간 동안 ‘주어진 하루 일과에 100% 뛰어들어 몰입할 수 있다[走]’라는 뜻입니다.

돌이켜 보니 필자는 스승 종달 선사 문하에서 매주 주말마다 입실 점검과 더불어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신바람 나는 하루의 계획 및 좌선 1시간’(일상에서의 몰입의 원동력),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 ‘낮 동안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하루의 반성 및 좌선 1시간’(8시간 숙면의 원동력)을 통한 선 수행을 지속한 결과, 10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가슴에 맺혀 있던 모든 의심이 일시에 사라지고, 늘 있는 그 자리에서 필자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선 수행모임)의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주어진 일에 이원적인 분별심(分別心) 없이 온전히 투신(投身)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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