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는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현대 영미권 작가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이명선 기자] “이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정되자 문학계에서 쏟아져 나온 반응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60대 문학가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젊은데다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은 편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수상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다. 지난해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파격’ 행보를 보였던 스웨덴 한림원이 다시 전통문학으로 복귀했다는 평이 나오는 반면, 보수적인 선택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는 시선도 있다.

◇ 스웨덴 한림원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어놓은 듯” 

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63)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현지시간)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시구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발표 전까지 문학전문가들은 물론 대중들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년이 넘는 노벨문학상 단골후보였고,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Ngugi Wa Thiongo) 역시 최근 수년간 1~2위를 다투었다.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을 반영하고 문학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의미에서 페미니즘 작가인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의 수상을 유력하게 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고은 시인은 발표를 불과 이틀 앞두고 래드브록스에서 10위에서 4위로 갑자기 순위가 뛰어올라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특히 지역이나 성별, 장르적 안배의 측면에서 노벨상 수상을 점쳐온 호사가들에게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해만큼은 한림원이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드라마와 영화 대본, 심지어 작사가로도 이름을 올리며 대중적인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뮤지컬영화의 대본을 쓰고, 재즈가수 스테이시 켄트 앨범에 작사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가 각각 영화로 옮겨진 것에서 보듯 그의 글쓰기에는 영화적 상상력이 배어 있다.

그럼에도 스웨덴 한림원이 이시구로를 선택한 건 ‘전통 문학’으로의 복귀로 읽힌다. 특히 지난 2년 간 수상자 명단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앞서 한림원은 지난해 미국의 시인 겸 가수인 밥 딜런과 2015년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파격 행보를 보여왔다.

AP통신은 “알렉시예비치와 밥 딜런에게 노벨상을 안기며 2년간 파격을 택했던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다시 전통으로 되돌아갔다”고 썼다.

노벨상위원회는 이시구로에 대해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우리의 환상적 감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발견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그는 과거를 이해하는데 큰 관심을 보여왔고, 개인이자 사회로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탐구하고 있다”며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어놓은 듯하다. 여기에 마르셀 프로스트의 성향도 약간 가미돼 있다”고 극찬했다.

즉 소설문학의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전쟁의 참상과 평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시구로의 소설적 천착은 노벨문학상이 추구해온 전통적 가치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평이다.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태생의 영국 소설가다.

다섯살 되던 해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영국 켄트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스물여덞 살이던 198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의 피폭과 재건을 그린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2015년 발표한 ‘파묻힌 거인’까지 모두 8권의 소설을 출간한 그는 주로 기억, 시간, 환상, 자기기만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 중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된 ’나를 보내지 마‘는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복제 인간들의 슬픈 운명과 사랑을 그린 SF 소설이다. 우리에겐 전후 영국을 배경으로 한 그의 세 번째 소설이자 앤서니 홉킨스, 엠마 톰슨 주연의 동명 영화 ‘남아 있는 나날’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그의 저서를 찾는 손길이 분주해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국내 번역된 이시구로의 저서 판매량은 직전 1개월간 보다 50배 가까이 늘었다. 또 다른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는 “이시구로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은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당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이시구로의 또다른 작품인 ‘나를 보내지마’ ‘녹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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