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조합원들이 지난해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타이어 산재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8월 10일,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 폐암으로 사망한 근로자 유족에게 한국타이어가 1억28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근로자를 숨지게 한 폐암과 한국타이어 공장 근무환경 사이에 연관성이 인정된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한국타이어가 발암 가능성을 알고도 안전배려 의무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은 숨진 근로자 및 유족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타이어를 둘러싼 산재의혹과 은폐의혹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2006~2007년에는 무려 15명이 돌연사해 큰 파문에 휩싸였다. 이에 당시 정부는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산재 은폐 및 법 위반 혐의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국타이어의 ‘죽음의 공장 잔혹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김종훈 새민중정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암 등의 질환으로 인해 숨진 한국타이어 근로자는 46명에 달했다.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이 계속 남아있다는 의미다.

또한 한국타이어의 산재 은폐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심지어 산재 신청 근로자를 자해공갈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겼다.

◇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분주한 5개월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라 주목을 받았다. 위에 언급한 판결이 내려졌을 뿐 아니라,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청와대에 제기한 진정이 대전지검에 배정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 관련 질의서 답변에서 “고무산업 종사자들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치료 및 건강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마련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유해물질의 인과관계 등 원인규명을 통한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 및 지원을 강화하고, 물질안전자료 공개의 투명성을 강화하며, 피해노동자들의 치료 및 건강관리를 위해 예방대책마련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 ‘적폐청산’ 발걸음의 화룡점정이 될 국정감사가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잇단 과로사 발생으로 논란을 빚은 넷마블 관계자도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숨진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국감 호출을 받지 않게 됐다.

정치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한국타이어가 제외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래된 문제다보니, 최근 새롭게 드러난 현안들이 우선적으로 다뤄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는 단순히 산재만이 문제가 아니라, 은폐도 심각하다”며 “집단 사망사태 당시는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 일가의 사돈인 이명박 정권이었다. 여러 방식으로 은폐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국감에서 다뤄지지 않는 점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타이어가 정권 눈치보기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타이어는 ‘건강한 사업장 만들기’ 노사정 TFT를 지난 4월 구성했다. 사측과 2개 노조, 관계당국 등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 TFT가 구성된 것이다.

박응용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위원장은 “또 다른 산재 은폐를 위한 움직임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이미 2008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허위 역학조사를 하고, 정확한 원인규명 없이 보상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은 “해당 TFT는 산재 문제와 전혀 무관하며, 어떤 문제가 있어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좀 더 나은 환경의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천명했고,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문제는 여전히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