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퇴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정몽규 축구협회장(왼쪽)과 2002 월드컵을 유치해 성공으로 이끈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거스 히딩크. 우리 축구사에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그런데 요즘 그 이름이 논란에 휩싸여있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진출을 확정짓고, 본격적인 담금질에 돌입해야 할 시점에 말이다.

히딩크를 둘러싼 논란은 축구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을 상징한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이 위기에 빠지자 히딩크 감독의 측근이 그로부터 “한국 대표팀을 맡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이를 축구협회에 전달했으나 묵살됐다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논란으로 난감해진 것은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뿐이 아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향한 사퇴 요구도 거세게 일고 있다. 또한 2013년 처음 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두 번째 월드컵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 성공한 축구협회장 정몽준, 실패의 길 걷고 있는 정몽규

반면,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사촌형이자 전 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히딩크로 웃은 인물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1993년 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해 1996년 2002 월드컵 유치를 확정지었고, 히딩크를 통해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을 선택한 것이나 연이은 대패 속에서도 그를 신뢰한 것,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 등은 아직까지 좋은 선례로 남아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축구대표팀 감독 잔혹사로 인해 히딩크 감독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히딩크는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정몽준 이사장의 ‘차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재임한 기간(1993~2009년) 한국 축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월드컵 4강 신화 뿐 아니라, 박지성 등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2002년 멤버들의 뒤를 이어 등장했다. 우리의 월드컵 최고 성적과 원정 첫 승, 원정 첫 16강 모두 정몽준 축구협회장 시절 기록했다.

반면, 정몽규 축구협회장 시대에 들어 한국 축구는 퇴보가 뚜렷하다. 유럽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여전히 많지만,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통과마저 버거워졌다. 지난 월드컵이나 이번 월드컵이나 본선 진출에 실패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과정이다. 축구협회는 수 년 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감독 선임 등 굵직한 사안에 있어 혼란을 반복했고, 밀실행정으로 신뢰를 잃었다. 심지어 공금유용 등 내부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총체적 난국은 결국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책임론을 대두시켰다. 그동안 ‘책임’을 이유로 여러 감독이 물러났고, 축구협회 요직이 교체되기도 했지만 정몽규 축구협회장만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정몽준 이사장에 비해 축구협회를 이끄는 안목이나 리더십이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몽준 이사장은 기업 출신 인사와 축구인 출신 인사를 적절히 기용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 반면, 정몽규 회장은 몇몇 측근에 둘러싸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축구계 원로 김호 전 감독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뭘 모르시는 것 같다. 주위에 예스맨이 너무 많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간에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이 3년간 재임하긴 했지만, 정몽규 회장은 사실상 사촌형 정몽준 이사장으로부터 축구협회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첫 임기를 마치고 연임을 시작하고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와 함께 축구협회의 발걸음이 더 무거워지고, 갈팡질팡해진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 축구인이 밝힌 견해는 꽤나 흥미롭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큰 사건으로 결국 파국을 맞은 것처럼,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축구협회도 파국에 이르러서야 물러나고 변화할 것”이라며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가 그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월드컵엔 진출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본선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보다 더 나쁜 내용과 결과가 불가피하고, 이것이 적폐청산의 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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