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은 조세개혁에 대해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가장 민감한 국가정책인 조세제도에는 정부의 경제·사회 현황에 대한 인식과 향후 추진될 정책과제가 모두 반영된다. 한국과 미국은 모두 조세개혁이라는 큰 산을 마주보고 있지만, 두 정부의 시선은 판이하다. 한국에서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세제개혁안의 발표와 함께 ‘부자증세’ 논란이 불거진 반면 미국에서는 ‘부자감세’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 올려, 말아? 최고세율 논란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개정안’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분배를 개선하겠다”며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고가의 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상향조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곧이어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에서는 “고소득층 과세는 강화하되 서민·중산층 및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세제지원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부부처가 추진근거로 제시한 것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다. 통계청이 지난 5월 발표한 ‘2016년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지니계수·5분위배율·상대적 빈곤율 등 소득분배지표들은 전년에 비해 모두 악화됐다. 특히 정부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은퇴연령층(66세 이상)에서 소득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져 대책마련이 촉구됐다.

미국은 한 발 앞서 조세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말 첫 세제개혁안을 내놓았으며, 현재는 석 달 뒤 발표한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새 조세정책에 담긴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은 문재인 정부와는 정반대였다.

CNN은 새 세제개혁안을 받아든 9월 27일(현지시각) 세부사항을 보도하며 “소득세·법인세 완화와 소득공제 확대, 그리고 상속세의 폐지”라고 요약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현재 일곱 단계로 나눠진 미국의 개인소득세 납부비율은 3단계(12·25·35%)로 단순화된다. 이는 추가적인 조정이 없을 경우 39.6%였던 최고세율이 35%로 완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표준공제액 한도는 현행 규정의 두 배로 늘어나는 반면 법인세는 35%에서 20%로 대폭 낮아진다.

◇ ‘양적 성장’과 ‘지속 가능한 성장’ 사이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낮은 규제·낮은 세금 정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S&P500 주가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후 약 20% 상승했으며 블룸버그는 14일(현지시각) “감세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리란 확신이 다소 낮아지면서 달러지수의 상승세가 멈췄다”고 밝혔다. 하루 전 세제개편안 시행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역대 최고치(22,899.50)를 기록했던 다우존스 산업평가지수는 현재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반면 정부 주도의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강조해온 IMF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감세가 재정적자를 심화시켜 경제계에 불안감을 심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약 20조달러에 달하며 지난 9월에는 연방전부의 셧다운을 막기 위해 국가부채한도 상향기간을 12월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부자감세’를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저소득층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CNN은 13일(현지시각) 기사를 통해 건강보험 보조금과 이민자아동 강제추방 연기 프로그램을 폐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를 감세를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협의안이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됐다”는 민주당과 일부 언론의 주장을 소개하며 “세제개혁안 시행 시 소득 상위 1%의 2018년 세후소득이 8.5% 증가하는 반면 하위 80%의 경우 증가율이 1% 내외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미 세무정책센터의 분석을 인용했다.

친기업적 경제정책을 펴는 트럼프 행정부의 집권과 함께 활황을 맞은 미국 경기는 감세가 기업 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반면 한국은 주요국 중 드물게 국가부채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고령화와 청년실업 문제가 대두되면서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요구받는 중이다. 복지제도를 확대하기 좋은 시기라는 주장과 자칫 성장세를 탄 경기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의견의 대립은 곧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체가 누구인가는 질문과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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