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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에세이'] H에게-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설악산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설악산
  • 시사위크
  • 승인 2017.10.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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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주말에는 설악산에 다녀왔네. 고속도로나 넓은 국도를 피해 지방도를 주로 이용했지. 40년 전 생각이 나더군.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통하던 때였지. 서울에서 인제 가는 데 7~8시간이 걸릴 정도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었어. 논산훈련소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나와 서울 근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마칠 때까지도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할 줄 몰랐지. 춘천에 있는 신병보충대에 들렸다가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인제 신남이라는 곳에 내려서야 ‘강원도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실감 나더군. 평야지대에서 자란 내가 그렇게 좁은 하늘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내가 나고 자랐던 고향의 하늘은 무척 넓었거든. 50m 높이의 언덕이나 야산도 보기 어려운 들판 한 가운데 있는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이리 봐도 산이고 저리 봐도 산인 강원도가 생소했네. 당시 신병들을 인솔하던 고참병이 산 능선에 보이는 나무 가지들을 휴전선의 철조망이라고 겁을 줄 때도 정말인 줄 알았으니까. 그때 불안한 표정으로 군용 트럭 뒷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가던 길이 지금은 사라졌거나 아스팔트길로 바뀌었더군.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가수 양희은이 내 젊었을 때 불렀던 <한계령>를 따라 부르며 한계령을 넘었네. 한계령은 내 젊은 날의 땀과 눈물과 환희가 배여 있는 고개야.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계령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비포장 국도였네. 봄 가을이면 학생들의 수학여행 차량이 가끔 지나갈 뿐 사람이나 차량들의 왕래가 아주 뜸한 고개였어. 대학생들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던져주던 과자와 사이다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받아먹던 기억이 나는군. 군복을 입으면 염치나 체면을 상실하던 시절이었지.

당시 한계령 정상에는 지금처럼 넓은 주차장과 휴게소는 없었고, 도로 옆에 나이 든 아저씨가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을 뿐이야. 관광객이 많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넓은 주차장이나 큰 휴게소가 있을 필요도 없었고. 주로 라면, 소주, 나물 같은 것들을 팔았던 그 작은 가게에 당시 일반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전화가 있었네. 무장간첩들이 자주 침투했던 시절이라 외딴곳에 있는 마을이나 집에 인근 군부대나 경찰서의 비상전화가 설치되어 있었던 시절이야.

당시 오색 약수터 근처에도 서너 채의 민가만 있었네. 약수터에서 철분이 듬뿍 든 약수가 펑펑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어. 거기에도 간첩신고 전화가 있었네. 한계령과 오색에 있는 대간첩작전용 전화들은 ‘삐삐선’을 사용했기 때문에 눈과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끊기는 경우가 많았네. 게다가 전화기도 배터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주 교환해줘야 했어.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부대의 통신병들이 자주 한계령과 오색을 오가야했지. 그때는 사병들이 이용할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비상시가 아니면 그 먼 길을 걸어 다녀야 했어. 보통 이른 아침에 부대를 출발해서 한계령을 거쳐 오색에 갔다가 밤늦게 귀대했네. 난 통신병은 아니었지만 일요일이나 휴일에 같은 막사를 사용했던 동료들을 따라 한계령과 오색에 자주 갔네. 오색 약수터에서 사먹던 약수로 지은 푸른 ‘사제밥’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야. 당시 군대의 '짠밥' 에 찌든 사람들은 내 마음을 이해할 걸세. 사병들에게 ‘사제 김치’와 '사제 밥'이 얼마나 별미였는지를 알고 있을 테니까.

자동차로 힘들이지 않고 한계령을 넘어가면서 그 옛날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색까지 삐삐선을 점검하며 계곡을 오르내리던 시절을 생각했지. 힘은 들었어도 즐거웠던 외출이었어. 그때 남설악을 오르내리며 보았던 풍경에 홀려 제대 후에도 설악산이 좋아 자주 찾고 있네. 휴전선 남쪽에 설악산만큼 아기자기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 드물거든.

가리산, 필례약수, 한계령, 설악산, 오색약수 모두 아직도 나에게는 정겨운 이름들일세. 하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네. 분수처럼 힘차게 솟구치던 오색 약수도 요즘은 거의 나오지 않아. 그 약수 맛을 보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필례 약수터 근방에도 영업하는 가게들이 몇 개 생겼더군. 예전에는 약초를 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너와집만 한두 채 있었던 한적한 산중이었는데… 이번에 진동계곡에도 잠깐 들렸는데 거기도 마찬가지야. 예전의 모습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어. 젊었을 때 좋아했던 곳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보는 건 슬픈 일일세. 변하지 않는 게 없다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그러니 젊은 시절의 추억이 조금이라고 남아 있는 곳을 자주 찾을 수밖에. 이번 주말에 설악에 다시 갈 예정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