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조성돼 이장 명령이 내려진 뒤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있는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묘지.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버지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불법묘지 문제로 국감에서 질타를 받았다. 재벌에겐 ‘껌 값’에 불과한 벌금을 내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18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부 산림청 국감에서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최순실을 언급했다. 최순실 일가가 가족 묘역을 조성하며 각종 불법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담당 지자체의 조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주홍 의원에 따르면, 최순실 일가는 경기도 용인의 한 임야에 가족 묘역을 허가 없이 조성했으며, 면적 및 봉분 높이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측은 10월까지 묘지 이전 및 임야 복구를 명령했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순실 일가 측은 별다른 조치나 답변이 없는 상태다.

불똥은 최순실 일가와 같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재벌들에게로 향했다. 황주홍 의원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비롯해 태광그룹 등을 지목했다.

정몽규 회장의 부친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은 2005년 별세했다. 묘지는 생전에 준비해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의 한 야산에 조성됐다. 평소 수상레저를 즐겨했던 고 정세영 명예회장이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점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10주기 당시 세워졌던 조형물. 현재는 철거된 상태다. <시사위크>

하지만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묘지 조성이 불법이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됐고, 10년 지나서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정몽규 회장과 현대산업개발이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당시 고 정세영 명예회장 묘지 주변은 보도블럭이 깔리는 등 공원처럼 꾸며졌고, 대형 조형물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 역시 불법이었다.

이때부터 담당 지자체인 양평군청은 법적인 조치에 들어갔다. 묘지 이장은 물론 원상복구를 명령하고, 불법 행위를 고발한 것이다. 결국 정몽규 회장은 벌금 처분을 받았고, 지난해 조형물 철거 등 원상복구를 완료했다. 하지만 묘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양평군청은 지난 6월 정몽규 회장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두 차례 이장명령 등 충분한 시간을 줬음에도 묘지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행강제금이 500만원에 불과하고, 1년에 최대 2회까지만 부과된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연간 1,000만원만 내면 묘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법적으로 강제 이장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행강제금의 규모는 일반인에겐 큰 부담이지만, 정몽규 회장에겐 그렇지 않다.

장례·묘지 부문의 한 관계자는 “묘지가 조성된 곳이 워낙 명당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족 입장에선 가능하면 이장 자체를 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이장해서 새로 묘지를 조성하면, 묘지의 넓이 등을 현행 규정에 맞게 해야 한다. 현재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묘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주홍 의원은 “대기업 일가 역시 현행법이 이행강제금 외에 다른 강제적 수단이 없는 점을 악용해 불법으로 가족묘지를 조성해 유지하고 있다”며 “농지나 임야에 불법적으로 묘지를 조성한 주요 인사들이 적발되더라도 연간 최대 1,000만원의 이행강제금만 납부하면 된다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 벌금 부과 외에 행정당국이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극 고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몽규 회장은 매년 5월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기일 때마다 회사 관계자 등과 함께 묘지를 찾아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올해 역시 기일을 앞둔 지난 5월 19일 추모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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