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 7명이 전원 사퇴한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을 연이어 불출석했다. 사실상 재판이 중단됐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본질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재판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실체 규명은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도리어 재판 중단을 불러온 변호인단의 총사퇴와 이로 인한 국선변호인 선임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꺼내든 ‘정치보복’ 메시지가 수용 여부를 떠나 확산된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때문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유영하 “꼼수 비난 감당하겠다”

난처해진 쪽은 재판부다. 1심 재판을 이끌고 있는 김세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19일 열린 공판에서 “더 이상 국선변호인 선정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선정 절차를 진행”할 뜻을 밝혔으나, 전망이 밝진 않다.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요지부동이다. 국선변호인과의 접견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향후 재판에도 출석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선변호인 선임을 끝까지 거부하면 재판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최악의 경우 피고인이 없는 궐석재판을 열 수밖에 없다.

사실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는 것도 어렵다. 수사 및 재판 기록이 12만쪽에 달하는 데다 80차까지 이어진 재판 진행 상황을 검토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변호인들이 기피하는 자리다.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임계를 제출한 유영하 변호사만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계획한 주 4회 재판은 물리적으로 진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장기전을 각오한 눈치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총사퇴를 앞둔 변호인단 일부에게 “형량이 20년형이든 30년형이든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19일과 20일 공판에도 불출석했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앞서 유영하 변호사는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 원칙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어떤 변론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꼼수라는 비난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에 대한 비난은 저희가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선변호인 선임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임계를 제출한 유영하 변호사를 꾸준히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법리 다툼이 아닌 정치적 공방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른바 프레임 전쟁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점으로 해석했다. 변호인단의 전원 사퇴로 홀로 남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부각돼 지지층 결집을 도울 수 있고,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치보복 때문이라는 해명이 가능하다는 것.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테니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구속기간 연장을 결정하자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혐의 부인이자 재판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셈. 재판은 더욱 혼탁해질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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